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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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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나싱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140회 작성일 22-02-05 05:48

본문

난중일기

         / 나싱그리

 

-경자년(庚子年) 삼월 열이레.

 

안면에 마스크를 쓰고 외출을 한다.

휴대폰으로는 안전 안내 문자가 뜬다.

뉴스 속에서 어제의 이웃이 확진자가 된다.

오늘의 가족이 유증상자가 되어 격리된다.

백신의 상용화는 아직 멀고 아무나 가까이하기에는 위험한, 소리 없는 전장.

그리고 도시마다 갈 곳을 잃은 개미들의 행렬.

그해 봄은 여지없이 또 푸른 하늘을 몰고 찾아왔지만,

꽃이 피기도 전 사람들의 마음은 지쳐서 무더기로 무너져 내렸다.

 

 

-경자년 오월 초열흘.

 

어느 꽃밭에서는 꽃의 모가지가 사정없이 잘려 나갔다는데,

긴급재난지원금이 참으로 오랜만에 어려운 시장에 풀렸다는데,

어제는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다시 코로나가 번졌다는 소식.

오늘은 오랜 가뭄 끝에 이 세상에 빗발이 떨고

막 밭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얗게 세어 버린 시름 모두 바람에 날려 보낸 버들가지에,

나도 잠시 너처럼 늘어져 푸르른 마음을 닮고 싶어라.

 

 

- 경자년 오월 그믐.

 

거리가 비틀거린다.

소문이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고로 건강하려면 몸에 피가 돌아야 한다.

하여 돈이 풀린다.

차츰 전신에 온기가 돈다.

아직은 그대 춤추는 욕망이 버겁다.

닫혀버린 마음의 창이 두렵다.

오래도록 지친 마음에 백신을 접종하고 돌아온 오후,

마음의 평화는 멀다.

 

 

- 경자년 시월 스무이틀.

 

화려한 외출을 생략한 지도 오래, 어느덧 앞산에 단풍이 들고 반갑지 않은 황사가 밀려왔다.

그해 봄에는 적어도 해를 넘기지는 않을 거라고들 했다.

어느 순간 이제부터는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한동안 함께 가는 거라 했다.

견디고 또 견디는 연기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삶의 텃밭은 푸른 하늘길로 이어지지 못하고 점차 활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 경자년 섣달 열이틀.

 

마지막 한 사람까지 그 행방을 추적하라는 지령을 받고, 이제 사방은 핏기를 잃은 도심.

진눈깨비 날리던 그해 겨울, 떠돌던 마음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는 밝아오는 새해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좀 더 따듯한 세상에게 용서받지 못하고,

끝내 눈보라에 갇힌 채 머나먼 이국(異國) 땅에서 한 조각의 인생을 떠나보낸다.

그리하여 우리 이 어지러운 난()이 끝나는 날, 그리운 영화로 다시 만나자며.

 

 

- 경자년 섣달 스무나흘.

 

이 난의 끝은 언제?

오호라, 몸이 멀어지니 마음마저 멀어지는구나.

오늘은 기상과 함께 한 단계 올린 공습경보가 발령된다.

또 다른 나라에서는 적이 되어 나타난 코로나가 변이를 일으킨다는 소식.

하늘을 향한 포는 짙은 연기를 쏘아올리고 일제히 바다를 건너 일상에 침투하는 미세먼지의 무리까지.

마음마저 빼앗길 수 없어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들이 아직 서로를 경계하는 곳.

그리고 머지 않은 어느 날 반가운 백신을 싣고 오는 바람이 있어,

언제 그랬냐는듯 이 뿌연 하늘을 밀어내겠지요.

 

 

- 신축년(辛丑年) 삼월 스무여드레.

 

Close.

단지 내 상가 미용실 입구, 굳게 입술을 다물고 있다.

단골손님 하나둘 똑똑 노크해 보지만 귀가 막혀 있다.

캐나다로 유학 간 그녀의 외동딸.

엄마의 가슴엔 바다 건너 들려온 딸의 마지막 목소리가 생생한데,

며칠 전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만 사이버 공간을 떠돌았다.

지구촌엔 백신 접종도 늘어만 가고 난은 저만치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웃은 하늘이 그녀로부터 희망을 훔쳐 가버렸다고 했고,

혹자는 남의 말 하듯 부양하던 그녀가 마침내 딸로부터 해방되었다 했다.

 

 

- 임인년(壬寅年) 이월 초나흘.

 

너도나도 많이 지쳤다.

이제는 난중일기를 탈고하고 싶다.

지난 일기장을 펼치면 하나같이 회한과 희망이 교차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봄을 맞이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이 절정이라고 믿고 싶다.

그날의 느낌이 묻어나는 몇 잎의 일기일망정 우리들의 상흔이라는 이름으로 전하고 싶다.


댓글목록

나싱그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나싱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동안 연작시로 올렸던 난중일기 시편에
마무리 글을 더 추가하고
산문시 느낌을 곁들여
하나의 시편으로 엮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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