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菩提와 함께하니 뭐가 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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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菩提)와 함께하니 뭐가 돼도 좋다
사문沙門/ 탄무誕无
보리를 매일 마주 보며
받아먹고 쓰고 있는데도ㅡ
중생 기준(눈)으로만 보느라
중생에겐 보리가 절대 보이지 않아
이생에서 보리를 통째로 휘리릭 날려 먹는
온 누리에 겁나게 많은 중생,
뻔히 보이는 보리 받침 받아먹고 쓸 줄 몰라
제 코를 스스로 풀 줄 모르는 코가 석 자인 중생,
천지에 널려있고 깔려있는
제 놈 앞에 우주를 거느린 뻔히 보이는 것도 볼 줄 모르면서
중생은 제가 젤 잘 났다고만 한다
무조건 제 놈이 젤 났다고 해야 좋아한다
현존(실존)하고 있는 것을,
내가 확연히 보고 있는 것을,
볼 줄도 모르는 눈 뜬 봉사인 주제에 말이야
기가 찰 노릇이다
이 몸뚱아리로 다 받아내야 하는 살이 인생살이가
가는 데마다 중생뿐이어서
내가 중생과 전혀 교류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말을 섞다 보면 돼 처먹지 못한 중생은
나쁜 버릇 습관이 된 경계의 시선이 발동되어
대뜸 다짜고짜 태클부터 걸려고 들어온다
야문 나도 중생법에 야물게 물든 중생 때문에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살이가 마디다 마뎌,
중생 짓 하는 놈에게 당하면 안 아픈 게 아니다
똑같이 아프다, 아파
중생은 하여튼 건방지고, 중생법은 에이 고약한지고!
분별(分別, 중생법) 먹고 살찐
중생 눈은 한참 오염되어 있어 가볍질 않다
중생에게 상처 난 이 마음 화두로 꾹꾹 그려 뭉개면
천수천안千手千眼이 날 치료해 주는 약사가(약사여래불이) 된다
중생에게 체한 속 싹 다 내려가게 소멸시킨다
더 이상 신물 나는 중생이 아니다
문수文殊(문수보살)에 걸맞은 내가 보람찬 붓다
*
*
보리菩提/
붓다와 매일 함께하는 깨침을 뜻합니다.
더욱더 친절히 문수文殊에 맞게 가르쳐 드리면
계합해서 붓다를 보고 있는 게 깨침이고, 보리입니다.
그러면서 보리가 열반이고, 해탈이고, 정각입니다.
그 외 같은 뜻 다른 이름이 수없이 많습니다.
'같은 뜻 다른 이름에 속지 마십시오.'
코/
판단하는 기준, 모든 것을 중생법에만 놓고 보며
제도권의 지식과 정보에 끌려가기 때문에 코가 꿰인 것을 뜻합니다.
고약한 중생법 지식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에
코가 꿰인 채, 코 잡힌 채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여기에 한 겹 둘러 뜻을 서술한 것이'코를 풀 줄 몰라'입니다.
또 코를 풀 줄 모르니 코가 막혔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한 겹, 두 겹, 세 겹 두르는 것을 조사관祖師關, 조사선祖師禪(선문禪門)이라 합니다.
조사선 조사관은 깨침의 언어를 말합니다.
조사관, 조사선 형식을 취한 언어는 깨침의 언어이기 때문에
붓다에 대해 깨쳐야 알 수 있는 말(선문)입니다.
깨치기 전에는 그 뜻을 짐작도 할 수 없고,
제가 가르쳐 드리기 전에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래서 조사관할 때 '빗장 관關 자'가 사용된 것입니다.
저의 살림살이 내어 드리며 친절히 가르쳐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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