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돌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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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순
대장간에서
칼날에 불꽃을 품고 떠났던
서슬 퍼렇던 칼이
몽니가 되어 돌아왔다
으스러져 이빨이 빠진
초췌한 몰골로 자존감을 상실한 채
응급실 수술대에 누워있다
숫돌은 칼의 차트(chart)를 읽고 있다
무뎌진 칼을 세워 숫돌을 배니
칼날의 사혈(死血)이 보인다
자기 몸이 아니라고
함부로 칼등으로 치고
칼날로 배고 찌르고 째고 자르던
참혹했던 날들,
성한것이 한 곳도 없이
숫돌에 의지한 채
한 때 불꽃처럼
번뜩였을 기백을 애써 지우려 한다
칼날을 숫돌에 칼같이 힘 주어 밀어내고
칼날에 힘을 빼고 끌어당김을 반복한다
가끔씩 칼 양날 끝을
번갈아 훓어보는 눈썰미,
엄지손가락을 쓱 칼날에 문질러
섬세한지 한 번 더 표정으로 읽는다
칼을 가는 일은 제 살을 베어내는 일이다
칼의 상처는 억겁의 시간을 거스르고
제 몸이 아니라고
마구 동강 내다가 배인 상처,
전장* 속 숫돌은
칼의 상처가 덧나지 않게
정기를 불어넣으니 칼 날이 앙칼진다
숫돌은 칼날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한다
숫돌을 벤 칼은 새 칼로 거듭난다
숫돌은 칼날을 품었다
숫돌은 명의(名醫)이다
*어떤 일을 책임지고 맡아 실행함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자칫 흥미를 읽기 쉬운 숫돌의 이미지를
숫돌에 갈 듯, 흐트러지지 않게 잘 말아
거머쥐고서 끝까지 잘 도착 시킨 것 같습니다
담박한 맛, 보고 갑니다
최경순님의 댓글
숫돌은 알았을까요?
칼의 상처를~
담백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나plm님,
onexer님의 댓글
숫돌에 연마된 날선 날카로움이
파란바다 은갈치 빛 기백으로 다가옵니다.
누구나 품어야 할 기백
그 걸 품으려 숫돌 하나 준비하겠습니다.
눈에 그려지는 글 잘 감상했습니다. 최경순 시인님~^^
최경순님의 댓글
칼의 역활은 그 칼날의 기백이라면
서슬퍼런 날의 섬세한지를 가늠하는 것은
숫돌, 유일하게 칼을 잘 다룰 줄 아는 것은
숫돌입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품 듯 칼을 품어
세상에 내어놓아 편리를 제공하는 것 아임미까
또, 찾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onexer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