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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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불빛을 사랑한 나머지
황홀한 자결을 꿈꾸는 불나방을 닮고 싶었나 보다.
콜타르처럼 두껍게 발린 어둠이 아직 벗겨지지 않은 이른 새벽
야트막한 산을 옆에 둔 농로를 따라 서행하던 중,
내 가슴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날 선 바람의 양미간이 찌그러지고 무언가가 빠르게 지나갔다,
슬픔도 놀라지 못한 채였다.
어둠을 가른 외마디 허밍,
조각난 울음이 그대로 굳을 것만 같아 나는 너무 두려워 눈을 감았다.
죽음이 배송될 주소지가 누락되었기를 기도하며
눈동자에 빗장을 걸었다.
그 순간,
고요는 한 겹 더 깊어졌고 기억은 무언가를 은닉하기 시작했다.
아직 빈 무덤 하나 예약할 수 있는 건
내면의 바다가 기울지 않았기 때문,
펄펄 끓던 쇳물 같은 감정도 긴 침묵 끝에서 식는다.
본래의 바다로 돌아갈 줄 알기 때문이다.
고라니는 어느 틈에 사라졌고 남겨진 건 미세한 떨림뿐,
떨어진 털 몇 가닥과 박음질처럼 끊어진 발굽 소리에 바람의 현이 출렁였고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가 망가졌음을 알아챘다.
한 생의 종착지를 목격한 자의 죄 없는 죄의식이 두 번째 이별을 만들고 있었다.
범퍼에 묻은 고라니 털 몇 가닥으로 아침 해가 몹시 추웠다.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제목에서 많이 머무르게? 됩니다
혹, 목격한 것인가요?
어제 먹을게 없어 하천 길대숲에서 이상한 소리 나길래 쳐다본, 눈이 마주쳤더랬지요
힘이 없는 움직임으로 성격답지 않게 어슬렁 숲속으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아무런 생각 없는 눈빛 하고서...
잘 감상하였습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작년 이때 쯤, 이른 아침 야트막한 산 밑, 농로를 따라 헤드램프를 켜고 서행으로 운전하던 중
갑자기 길 옆에서 불빛으로 달려들어 급정지하였는데 범퍼에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너무 놀라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숲속으로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후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불나방 처럼 헤드라이트 불빛으로 달려들었는지...머리가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침에 범퍼를 확인해 보니 고라니 털 몇 가닥 묻어 있더군요.
편안한 밤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얼마나 놀랐을까 시를 통해 알것 같네요.
로드킬은 아니라 다행입니다.
돌발사고 생각보다 많더군요,
항상 운점조심 하세요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골목길에서 야생 고양이도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갑자기 길로 뛰어드는 바람에
야간에는 늘 조심하게 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 이장희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