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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에서 눈이 내릴 때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405회 작성일 26-01-27 15:44

본문

우체국 앞에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도착하지 못한 편지들처럼

천천히 주소를 잃은 흰 말들이 내려와

보도블록의 틈에 멈췄다.

 

나는 창구 번호표를 쥔 채

내 이름이 불릴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다.

한 번도 정확히 불린 적 없는 이름,

발음될 때마다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는 이름.

 

창구 유리 너머에서 직원은 봉투를 달아본다

사랑은 늘 규격을 초과한다는 듯이.

 

눈은 계속 내려

우체국의 시계를 지우고 기다림의 분침을 녹였다.

지금이 언제인지 알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보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이미 떠난 사람에게 보내는 주소,

아직 오지 않은 나에게 보내는 안부

반송될 것을 알면서도

우표를 붙이는 손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눈은 편지처럼 접혀 밤으로 들어가고

우체국 앞에는

오늘 하루 배달되지 못한 말들이 조용히 쌓였다.

 

나는 끝내 번호를 불리지 못하고 문을 나선다.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두 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주머니 속에서

아직 보내지 않은 문장 하나가

천천히 체온을 얻고 있었다.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7연과 마지막연이 좋네요.
보내야 할지 망설임 어릴적 그런 적이 있는데 그땐 우체통 앞에서 그랬는데...
우체국 1년에 다섯 여섯번은 가는 거 같아요.
좋은 시에 머물다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profile_image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눈이 내리면 아주 오래전에 눈이 많이 내려도 편지를 부치려고 우체국에 갔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그때는 펜팔을 목적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감성을 버무려 글을 써서 보내면 거의 답장이 왔습니다.ㅎㅎ
오래전 이야기지요.
편안한 밤 되십시오. 이장희 시인님.

cosyyoon님의 댓글

profile_image cosyyoo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눈이 말이 될 수 있고 말이 눈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한계가 없는 사유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지,
경이롭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미소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랑...부치지 못한 편지...
복잡한 감정 안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최선이었음을...

공감 시 감상하고 갑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profile_image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나이를 먹었어도 때로는 오래 묵은 감정이 실 눈을 뜨기도 하네요
늘 건필하십시오. 미소시인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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