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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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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210회 작성일 26-04-09 12:42

본문


  제비꽃





  가수는 갔지만 노래는 남았고

  시인은 떠나갔지만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냐던, *

  그 울림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하루의 일을 마치고

  사무실 앞 커다란 느티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마도 세월을 오르내리던 물관 체관이었을 겁니다

  그 덕에 파릇하게 내미는 어린 잎사귀들이고요

  나무 주위로 동그랗게 뿌리내린 민들레들이 한가히

  노란 꽃잎을 들어올리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애네들도 시가 되었으면,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시름없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들 속 흰제비꽃 하나가,

  느닷없이 내 심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예전에 부르던 노래

  너무 센티멘탈해져서 자주 부를 순 없었던 노래

  천천히 담담하게 부르던 소녀의 슬픈 이야기

  소년이 나이들어서도 소년으로 남게 하는,

  제비꽃 닮은 노래가 있었습니다



  저토록 자그마한 꽃을 무심코 바라보았을 뿐인데

  갑작스레 오래전 노래가 떠오르는 건 무었일까

  생각해봅니다



  한번쯤 슬픔도 필요하다는 뜻일까요

  아님 슬픔 없이 꽃은 피지 않는단 말일까요

  그래요 우리에게도 몽우리 맺힌 슬픔이 있었고

  또 문득 민들레 홀씨처럼 슬픔이 날아올지도,

  모르는 거겠죠



  삶이 노래의 행간을 파고들어 쉼을 얻듯

  저 낮은 곳에서 슬픔을 견디고 있는 꽃의 몸짓을 우러르고

  그때 슬픔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생각해봅니다



  아마도 가수는 통기타 선율과 함께

  슬픔이 꽃처럼, 그저 수수히 아름답기를,

  그래서 슬픔이 센티멘탈한 노래의 부유물로 남지 않길,

  바랐을 겁니다



  꽃들을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꿈결처럼 바람이 불어

  느티나무 어린 이파리를 벚꽃잎들이 쓰다듬는군요

  언젠가 슬픔을 이긴 사랑이,

  슬픔을 배우지 못한 생에게 그러했듯이.




  *: 허수경 시인의 '탈상'에서 인용함.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profile_image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의 시를 읽으니 무뎌진 저의 마음도
슬며시 센티멘탈적 모드로 전환되는군요.
제비꽃, 민들레꽃 같은 낮은 겸손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 내내 비가 내렸습니다.
민들레도 제비꽃도 슬픔 없이 비를 받아들이더군요.
저도 그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따스한 말씀 감사합니다.
늘 잘 지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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