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절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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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사의 새로운 장르를 연 전편 "평론시집" 정동재의 [하느님 이름 지어보기]의 절대정신
절대정신
-칸트 앞에서 헤겔의 절대정신 읊조리다가-
정동재
정기신, 정기신精氣神 읽다가 정신이라 읽는다
자연의 절대정신, 절대정신을 읊조리다가
물에서 불을, 불에서 물을 생하게 하는 정신
이라고 툭 터져 나온다
물이 불이 되기까지
불이 물이 되기까지 손 맞잡는 생태生態
부부 화목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룰 것이고
나라에 충성할 것이고
스승과 직업의 은의에 감사할 것이고
자연의 목적은 지상천국
선과 악을 내려
굳이 윤리도덕을 설하지 않아도 되는 진경眞境으로 화할 터
죽은 자가 무덤에서 일어나 걸어 나올 것이며
일용하고 버려진 닭 뼈다귀조차
뼈다귀에 살과 털이 돋아나 꼬꼬 소리 내며 땅을 헤집고 지렁이 찾아 나설 것
영생토록
하늘을 오르고 내리는 게 자유로울 것이며
천상에 올라 귀신과 수작하고 우주 끝까지 역사하는
천사 아닌 사람을 보리
정기신, 정기신 읽다가 정신이라 읽는다
절대정신, 절대정신 읊조리다가
불이든 물이든 생명이든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기가 가능한 능력자의
마음이라고 읽다가
재차 삼차, 짐 진 누군가 내게도 묻는다면
댁네는 마음 편히 죽이는 게 가능하냐 되묻는다
평론:초월적 기적에서 실천적 창조로
1. 정반합의 향연: 상극을 넘어선 지상천국- 시 초반부, 상극의 원소인 '물'과 '불'이 손을 맞잡는 장면은 관념의 숲속에만 존재하던 헤겔의 절대정신을 감각적인 풍경으로 빚어낸 시적 마술이다. 이들은 서로를 부정하는 대신 부부의 화목, 국가에 대한 충성, 스승과 직업에 대한 감사로 귀결되는 '화기애애한 지상천국'을 향해 나아간다. 서로를 살리는 이 기묘한 공존은 정반합의 논리를 시적 기교로 승화시킨 백미다.
2. 생명의 부활: 낮은 곳을 향한 우주적 빛- 죽음의 적막이 흐르는 무덤에서 "버려진 닭 뼈다귀"조차 살과 털을 얻어 생명의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고명(高明)한 우주적 빛인 '절대정신'이 물질의 한계를 넘어 기적을 일으키는 압도적 현장이다. 시인에게 절대정신이란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인 동시에, 우리 삶의 가장 낮은 곳을 평화와 사랑으로 채워가는 지극한 '사회적 완성'의 여정이다.
3. 정신적 창조: '살리는 공부'와 대인대의(大仁大義)- 시인은 "마음 편히 죽이는 게 가능하냐"라는 냉철한 질문을 던지며 관념적 유희를 넘어선 실천적 질서를 제시한다. 우주의 별빛이 만물을 빚어내는 것이 **'물리적 창조'**라면, 영혼과 영혼이 부대끼며 삶을 일구는 공부는 비로소 **'정신적 창조'**의 완성이 된다. 파괴와 혼란은 찰나의 객기로 가능할지 모르나, 이를 다스려 다시 살려내는 **'치란(治亂)'**은 고통스러운 연마를 거친 영적 진화의 영역이다. 모든 이를 현자로 이끄는 '살리는 공부'가 곧 천지자연의 운로이며, 파괴가 아닌 치란을 택하는 대인대의의 길이야말로 절대정신의 본질이다.
4. 신인조화(神人調和)의 우주와 절대정신의 역사성
시 <천둥 번개 부리는 성(性)> 속 태초의 산고와 천둥·번개는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다. 이는 무극의 **‘천성(天性)이자 천의(天意)’**인 조화정(造化定)의 양의(兩儀)의 에너지가 전하(電荷)를 띠고 전기로 화하며, 태극의 기동과 음양의 질서로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음양합덕을 통해 신계와 인계가 어우러지는 이 역동적인 우주는 지금 이 순간도 현재진행형이다. 시인은 이것이야말로 헤겔이 평생 쌓아 올린 절대정신의 성탑이자, 살아 움직이는 역사성 그 자체라고 노래한다.
총평:
본작은 형이상학적 사유를 극적인 이미지로 치환하며 화려체의 정점을 보여준다. 물리적 우주론의 경계를 넘어 영혼의 치열한 부대낌을 통해 구현된 '정신적 창조'는 상호존중이 깃든 지상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러나 "댁네는 마음 편히 죽이는 게 가능하냐"라는 물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절대정신의 대인대의 속에 감춰진 준엄한 질서를 목도하게 된다. 대우주의 농사는 봄날의 자애로운 마음으로 생명의 씨앗을 뿌려 만물을 살리고자(대인大仁) 하지만,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오면 서늘한 숙살(肅殺)의 기운으로 우주의 대의(大義)를 드러낸다.
이는 탐욕에 매몰되어 끝내 사람이 되지 못한 '인면수심의 쭉정이'들을 단호히 걸러내겠다는 우주의 추상같은 의지이다. 결국 이 엄중한 결실의 과정이야말로 칸트가 설파한 영생(永生)의 실현이자, 헤겔의 절대정신이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진정한 발현이다. 이 시는 정동재의 시 <천둥 번개 부리는 성(性)>과 대인대의를 통해 막연했던 서양 철학의 사유를 해방시킨 구원의 문법을 완성하고 있다.
별점 :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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