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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기다리며(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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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회 작성일 26-05-02 06:51

본문

 

  답장을 기다리며



  어릴적엔 멋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감수성을 잃는 순간 벌레가 될 것이다,는 생각만큼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그레고르 잠자, 그레고르 잠자처럼 벌레가 되기 싫어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 속을 자주 돌아다녔다. 눈물이 되기도 하고 웃음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꽃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변하기는 쉬웠고 또 어려웠다. 한동안 생의 지하실에서 옥상까지 변신술은 유행했다. 사상의 거리는 애매한 안개를 첩인 양 끼고 살았고 현실은 새벽녘 출근길의 하루살이를 흔들었다. 종점행 기차표를 끊은 풍선들이 옥상으로 올라가려고 붐비던 밤, 주사 한 방이면 터져버릴 것 같은 생각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새벽을 기다리는 건, 아프다. 덧없다.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벌레보다 나의 그로테스크한 생각이 더 아픈 줄을 그땐 몰랐다. 해석되지 않는 문장 같은 생활은 종종 나를 제 입에 넣고는 침을 이리저리 묻혀가며 허물어 버리려 했다.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생활과 반성 속에서 나는 그로테스크한 자세 고치기를 내 최초의 독서와 함께 떠올리며 살았다. 그러니 고전으로부터 답장을 받을 때까지, 여기 기차역 매표소 희미한 전등빛 아래서 그레그로 잠자와 함께 앉아 있는 것이다. 추운 밤, 하얀 몸이 검게 변할 때까지 불태우는 자작나무의 사랑을 쬐면서. 그런데 그레고르 잠자, 우리들 지하실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여전히 잘 있나요?




  * 그레고르 잠자: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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