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가 서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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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떼 지어 구겨진 하늘을 날던 새들이 지상으로 내려오길 거부했다.
그들은 더 이상
낡은 질서의 일부가 되지 않기로 했다.
하늘의 점자가 되어 번개의 무늬를 다듬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무늬가 깨진 유리처럼 흩어졌고
어떤 날은 빛의 문장이 되어 내 심장을 겨눴다.
젖은 구름이 새 떼에게 젖을 물리는 동안
버려진 천사의 독백이 하늘 아래로 흘렀다.
그 속에는 발설되지 못한 언어들이, 버림받은 시간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내가 번개라고 불렀던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내 몸속에 잠들어 있던 압축된 바다가
눈을 뜨는 소리였다.
그 바다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만, 말을 건네기 이전의 침묵 같은 것으로 내 귓속을 채웠다.
파도의 끊어지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지만
번개의 뿌리까지 마르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피처럼,
어떤 시간은 불현 듯 쏟아지는 전류처럼 나를 통과해 갔다.
지축이 수직으로 흔들릴 때
누군가는 몸을 돌던 피의 통증을 견뎌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마음에 갈겨 쓴 수많은 오답을 지우며 등에 붙은 물표를 바라보았다.
그 물표엔 공란으로 남겨진 배송일자,
신만이 알고 있는 그날의 좌표가 적혀 있었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질문은 누락된 배송지에 닿기 위해
발송된 편지 아닐까.
물속에서 익사하는 물고기를 보며
세상을 읽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
물고기가 왜 눈을 감지 않는지 이젠 묻지 않는다.
그 눈동자엔 우리가 감추려 했던
수많은 실패의 그림자가 머물러 있으니까.
그럼에도 세상의 말문은 결국 열리고 신은 여전히 혼자 주사위를 굴리며 웃는다.
나도 가끔
타락한 천사가 흘린 문장을 끌어다 쓴다.
남의 부러진 날개를 딛고 솟은,
불온한 뼈를 품은 굽 높은 말로.
그 말의 속에는 누군가의 비밀이 들어 있고
어쩌면 나조차 알지 못한 내 안의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어도 끝까지 쓰고는 싶다.
그것이 어쩌면
나만의 번개가 서는 날일 테니까.
댓글목록
힐링3님의 댓글
이것은 요한계시록에 나온 성경적인 심연에
닿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묵언의 시이기에
한 두 번 읽고는 감이 오지 않을 수 있는
비밀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번개라는 것과 새들이라는 것과
바다는 것과 천사들이라는 것이 종합해서
시인님의 의식에 닿는 과정을 더듬어 가면
하나 둘씩 풀리고 있습니다.
그만큼 요한계시록인 측면에서 하나하나 해부해 들어가면
시인의 내부에 잠재 해 있는 진리의 바다를 밝혀내고
신과의 내통인 이 번개의 조우를 마주 하게 합니다.
이것을 세밀하게 조각해 가는
내밀한 언어의 미학이 숨겨 있어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를 한 차원
더 깊이 바라보고
이것을 끄집어 내어 펼쳐보이는
시의 상상력에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오랜 조탁의 수고로운 손길이
뜨겁게 전달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