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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소화의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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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purewater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24회 작성일 20-03-11 08:31

본문

능소화의 참회/CYT

능소화는 서글펐으리라
혼자서는 일어설 수 조차 없고
자랄수록 삶이 꼬여만 간다는 것이

능소화는 그 때부터 믿었으리라
사랑을 하면 자기에게도
기적이 일어날 거라고

능소화가 내려다 볼 수 있는 세상을 갖게 된 건
한발쯤 떨어져 있던 듬직하고 키 큰 소나무를
만나고 난 뒤 부터였다

몸이 자라는 대로 소나무를 힘껏 끌어안고
올라가다 목이 마른 날은 소나무가 내어주는
젖을 먹기도 하였다

능소화 덩굴이 소나무 꼭대기까지 잡고
소나무보다 더 높이 올라서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게 능소화나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덩굴에 대롱대롱 매달린 꽃들이
신이나서 아크로바틱 그네 공연을 펼치다
사진기를 들이댈 때마다 숨을 참고
포즈까지 취해 주던 모습을 좋아했다

어제 퇴근 길까지도 그랬는데
바람도 없었던 오늘 아침
능소화가 목을 던진 현장을 목격하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능소화는 확성기처럼 모로 누워
자기 때문에 말라 죽은 소나무를 바라보며 참회한다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면 안된다는 걸
당신을 끌어안고 올라갈 땐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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