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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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찾아왔다.
쪼개져나간 얼굴 반면에 한밤중 봉긋 솟구치는 부용꽃이 매일 새 상처를 만들어주고 있다고. 그러면서 파꽃처럼 쓸쓸한 미소 지었다. 나는 늘 싱싱하게 솟아오르는 그 피를 핥았다.
우리는 창가에 앉아 마주보며 덧없이 부풀어오르는 등나무 덩굴의 파란 이름을 서로에게 불어 주었다. 서로의 얼굴에 얇은 사 보자기를 씌우고. 보이지 않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나의 폐를 닮은, 공기 가득한 방안에서는 달빛이 붉은 색이다. 그리고 형체가 점점 뭉그러진다.
달빛이 피부에 와 닿는 감촉이 안 씻은 삼벳단처럼 따가왔다. 나는 달빛을 손안에 잡았다. 나의 손안에 수많은 상처와 솜털같은 가시가 남았다. 하지만 달은 미끄덩 내 손안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숨막히도록 밤하늘을 떠돌던 미세한 달빛 입자. 손끝에 고인 피 한방울처럼 조용히 허공에 멎어 있던 부용꽃. 입술 빨간 벼랑 위에 위태로이 흔들리던.
부용꽃이 달빛에 숨막혀 부슬부슬 떨어져 내리는 그 순간을, 나는 저 부용꽃잎이 차가운 땅 위에 누워 거듭 죽어가는 것이 높고 외로운 이의 운명인 듯하여 혼자 창밖을 바라본다. 이런 밤이면 아무리 기다려도 새벽이 오지 않았다.
댓글목록
부엌방님의 댓글
부용꽃이 새색시 걸음으로 창을 넘을 듯 합니다.
시의 정수란 이런것이구나
딱딱하고 투박하고 나의 시는 언제나 부용꽃잎처럼 부드럽게
써 내려갈까요
시인님께서 알려 주시는 듯 합니다.
시 향에 푹 빠지고 간신히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용꽃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