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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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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1,074회 작성일 17-12-10 14:50

본문

그릇 
 
   활연




이 둥근 흙벽은 짐승의 발톱을 새겼다

신의 자국을 질질 끌던 어둑살을 그려 주었다


    *

땅속에서 더디 깬 잠
흙의 이마를 짚어본다

허공이 밥알을 슬어놓듯
굶어 죽은 아이가 끼룩끼룩 날기도 하였겠으나
 
물의 음악이
불을 견디는 시간으로 둥글게 자란 

한 동이 울음을 이고 
죽은 발을 만져주기도 하였겠는데


    *

문명도 없고
고도도 없는
흙의 내장을 주무르고
주물러야 부드러워지는 지층을 굽기 위해

흙발로 걸어온 시간이 
어느 저녁 한 톨 먼지가 가라앉는 속도로
제 몸에
창의 시간을 새겼다


    *

오래전 깨진 허공에서
꺼멓게 탄 고요가 흘러나온다




[이 게시물은 시세상운영자님에 의해 2017-12-12 11:00:19 시로 여는 세상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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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올리신 시와는 별반, 관계없는 말이지만서두..

암튼, 詩題에서 지가 전에 올린 잡 雜글 한개도 생각이 나서...


- 그릇 -

나름 문학공부를 엄청 많이 해서 시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모某 대학의 국문학 교수가
한 무명無名시인 앞에서 잔뜩 거드름을 피며,
은근 잘난 척 하다가 이윽고 묻습니다

"근데.. 당신, 시가 무엇인지 알고나 쓰나? 뭐, 생각나는 대로
한 번 말해 보시게"

무명시인은 그 말에..

"어려운 걸음을 하셨는데, 우선 茶나 한 잔 드시죠" 하면서
교수 앞에 놓인 찻잔에 공손히 찻물을 따릅니다

이윽고 잔에 차가 가득차고, 그런데도 계속 따르니
급기야 찻물이 탁자 위로 넘쳐흐릅니다

그걸 바라보던 교수가 " 아, 이 사람아 찻물이 넘치지 않소?
그만 따르시게나" 하니..

그 무명시인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 교수님은 이미 가득 차 있는데, 제가 무슨 말을 한들
교수님이 채워질리가 있겠습니까? "

(뭐 이 얘기가 제가 겪은 경험담일 수도,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무언가를 채우려면 우선 그릇이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마음) 그릇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세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는 평범한 진리이겠지만,
이를 실천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습니다 (저 부터도 그렇고)

고상한 시도 좋고 드높은 학문도 좋지만..
그걸 말하기 전, 매사에 우선 겸허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되어야 할 거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요즘은 온통 잘난 사람들 천지라서
저 같은 못난 사람은 속절없이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세상이지만서도
한 생각 꼽아보니 그렇다는.. 그저 그런 얘기였습니다


                                                                                 
* 쓰잘데기 없는 얘기, 죄송하다는요


좋은 시에 머물며, 영양가 없는 얘기만..

혜량하소서

* 죽으면, 늙어야 해 - 활연 시인님의 한 말씀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빗살은 아마도 그맘때 흙낯에 그은 시였을 것입니다.
허공을 유랑한 빛을 멈추게 한, 빗살무늬는 서글픈 시였을 것입니다.
한 공기 공기를 마시고 사는 일이야 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겨우, 공복이나 공백을 떼우는 일일 테고
저마다의 행위는 묽은 피를 돌리기 위해 한 끼
밥을 구하는 일일 것인데
넘치면 어떻고 모자라면 또 그럭저럭이겠지요.
며칠에 한 끼를 먹는 검은 땅의 아이들이 있고
무량한 똥을 생산하기 위해 탐식성 탐욕도 즐비하겠지요.
소라가 바다를 담아 제 몸을 공명으로 삼았듯이
그릇에 담긴 게 한 끼 가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gloomy sunday란 영화를 보면
아름다운 여자를 공유한 반쪽의 남자 둘이 있고
자살하게 하는 음악이 있고
전쟁과 참혹한 살생이 있고
인간 군상의 탐욕이 있고 그렇더군요. 음악이든 시든
그릇 안에 부서지는 메아리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는 어쩌면 사소한 활자들의 춤일 것이지만
시시한 시나 끄적거리거나 고장난 발을 고치는 일요일입니다.

문정완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문정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요즘 활의 시에 묻은 서정이 준동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고요속에 묵음의 파열음을 전이한 언어의 숲
시는 고요의 어느 지점에서 흔들 때 그 감응 배가되는 것인가 봅니다
시가 시시하게 끄적거리는 손가락의 외출인지도 모르지만
그 사소한 끄적거림의 멈추지 않는 출발에서 사유의 음악이 출렁거리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릇 비어 있으나 고요가 소용돌이 치는 곳
휴일 날 좋은 시한편으로 배가부른  시간입니다^^

잡초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잡초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흙의 내장을 주무르신 활연 시인님의 그릇에
담긴 시 세상의 문장이 극치입니다. 제 빈 그릇에
따듯한 한끼의 고마운 식사라 생각 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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