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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팔레트/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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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가으피노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0회 작성일 25-10-23 23:29

본문

처음 그리는 그림
노랗고 빨갛고
청록색에 남색에
고동색에 결국 검정색
번지고 잘못 묻고
아직 못다한 색이 아쉬워
하얀색으로
망설임의 색으로
계속 덧칠해본다
아리고 시려운
그런 빛으로 채워진
오래전에 새하얗던 공백
그걸 떠나고 나서야
눈에 아른 거리며
하지만 다시 덧칠해볼까
다만 내려놓는다

눈없이 바라보며
말없이 읽어본다
떨리는 손으로 잡았던
사방으로 갈라지고
물든 초가리를 무심코
하얗던 종이가 그리 울도록
거칠게 문대고있는 나를
말라 비틀고 나서야 나를
할까다 만 말로 가득 찬 입안
혀뿌리까지 쓰게 바라본다

세상이 여덟번 덧칠되고
새하얀 공기에 나는
숨이 희게 바래듯
이만 저물은 색으로
아스라히 초가리에 스며 남은
추억의 색채에 더불어서
또렷한 그림을 그려보자

첫 종이는 마음으로
지금은 이성으로
초가리가 갈라지지 않게
아무 색이나 물들지 않게 그치만
뜨겁던 다채로운 색으로
과감히 그릴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나았을까
망설임 가득히 채워진 종이를
차고 무거워진 눈빛으로
기억에 멈춘 채 먹먹하게
차마 발을 떼지 못하겠다

멍 하니 끝나버린
못 다그린 남색의 그림
사랑을 했었나
염치없이 시려운 계절에
나도 모르게 계속했던가
마음 식어 묻어나는 망설임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나보다

거기서 끝나겠지
물감이 말라가게
붓을 내려놓는다면.
그렇게 바랠지도 뭉게질지도
원하는게 아닐 지도
그게 두려울 지라도
세상이 여든번 칠해져도
나는 빈 팔레트를 곁에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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