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은 늘 혼자였다 /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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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은 늘 혼자였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집에 가는 길에서 가장 솔직해진다.
낮 동안에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수업이 있고,
할 일이 있고,
대답해야 할 말들이 있고,
웃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자기 마음을 잠깐 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은 다르다.
버스 창문에 비친 얼굴은
낮보다 조금 더 지쳐 있고,
휴대폰에는 몇 시간째 오지 않는 답장이 떠 있고,
편의점 불빛은 이유 없이 환해서
괜히 더 외로운 마음을 들키게 만든다.
나는 한때
외로움이 특별한 감정인 줄 알았다.
비가 오는 날이나
이별이 지나간 뒤처럼
유난한 날에만 찾아오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외로움은 대개
그렇게 거창하게 오지 않았다.
컵라면 물을 붓고
삼 분을 기다리는 동안 오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 오고,
다 씻고 나온 방이
생각보다 너무 조용할 때 왔다.
잘 지내냐는 말을 듣고도
잠깐 대답이 늦어지는 저녁에,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래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젊은 날은 빛난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이라고,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런 말들은 늘
너무 멀리서 젊음을 바라본 사람들의 말처럼 느껴졌다.
가까이서 보면
젊은 날은 빛나는 시간이라기보다
계속 흔들리는 시간에 가깝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혼자 남겨질 수 있고,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왜 자꾸 작아지는지 알 수 없고,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불안한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그쪽으로 걸어갈 용기가 없어
더 오래 잠 못 드는 밤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의 젊음은
찬란하기보다 초라하다.
계획보다 불안이 많고,
확신보다 망설임이 많고,
사랑보다 오해가 많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간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는
아무 일 없는 얼굴을 하고,
친구들 앞에서는
적당히 웃을 줄 알고,
부모님이 묻는 말에는
대충 괜찮다고 답하고,
새벽 두 시가 넘어서야
겨우 혼자 진실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그 시간이 늘 이상했다.
온종일 남에게 맞춰 쓰던 얼굴을 벗고 나면
내 얼굴이 오히려 낯설어지는 순간.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못한 하루가
방 안에 가만히 쌓여 있는 순간.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이 무너진다는 것이
꼭 큰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걸 배웠다.
어떤 무너짐은
조용하다.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습관 속에서 자란다.
제시간에 학교에 가고,
제시간에 출근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조금씩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방식으로.
그래서 더 무섭다.
정말 위태로운 날은
오히려 울지 못한다.
울면 끝날 것 같아서,
지금 무너지면 내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사람은 자꾸 슬픔을 뒤로 미뤄둔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슬픈 것이 아니라
그냥 조용해진다.
나는 한동안
그 조용함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줄 알았다.
다들 이렇게 무뎌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무뎌진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혼자 버틴 것이었다.
도와달라는 말보다
괜찮다는 말을 먼저 배우게 되었고,
기다린다는 말보다
됐다, 그냥 자자
그 말을 더 자주 중얼거리게 되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견디는 법을 먼저 배운 것 같다.
친구에게 서운해도 티 내지 않는 법,
가족에게 속상해도 넘기는 법,
좋아하는 사람이 떠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법,
불안해도 잠깐 미뤄두고
내일 일정을 먼저 확인하는 법.
그렇게 견디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나중에 진짜 힘들어졌을 때도
자기 마음을 잘 구조하지 못한다.
침몰하는 배 안에 있으면서도
이 정도면 괜찮다고 말한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고,
다들 이 정도는 견디는 것 같다고,
조금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하지만 어떤 것들은
지나간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말해져야만 가벼워지는 감정이 있고,
울어야만 끝나는 밤이 있고,
누군가에게 들켜야만 덜 외로운 고통이 있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배웠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의 괜찮다는 말을
예전처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한다.
잘 지낸다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생략이 숨어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답이 짧은 사람들,
자꾸 농담으로 돌리는 사람들,
별일 아니라며 웃는 사람들,
그 사람들 안에 오히려
오래 말하지 못한 계절이 있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안다.
만약 누군가 묻는다면
젊은 날의 가장 큰 비극이 무엇이냐고,
나는 실패도 가난도 이별도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진짜 비극은
아무도 모르게 아픈 채로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살아가는 데
너무 능숙해지는 일이라고.
그 능숙함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천천히 해친다.
스스로를 돌봐야 할 순간에도
괜찮은 척하는 쪽으로 먼저 기울게 만든다.
도움을 청해야 할 때조차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말을
자기 자신에게 가장 먼저 하게 만든다.
그러니 혹시
오늘도 돌아가는 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면,
편의점 불빛이 괜히 서럽게 보였다면,
답장 없는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면을 꺼버렸다면,
나는 그 마음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약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지금
너무 오래 혼자 견디는 중일 뿐이다.
그리고 혼자 견뎌온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지쳤는지도
대개 나중에야 안다.
괜찮아지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 말은 자주 너무 빨리
사람을 다음 단계로 밀어버리니까.
대신 이 말은 하고 싶다.
괜찮지 않아도 된다고.
오늘 하루가 버거웠다면
그건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하루가 정말 버거웠기 때문일 수 있다고.
당신의 슬픔은 예민함이 아니라 신호이고,
당신의 침묵은 무심함이 아니라
아직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오래 버텨온 흔적이라고.
그러니 오늘은
자기 자신을 너무 쉽게 다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잘해야 한다고,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이 정도는 다들 견딘다고
자기 마음을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겨우 살아낸 하루를
별것 아닌 하루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끝까지 돌아왔다는 것,
무너지지 않은 척이라도 해내며
오늘을 건넜다는 것,
아무도 모르게 흔들리면서도
자기 자리까지 몸을 데려왔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돌아가는 길이 늘 혼자였던 사람들에게
이 문장을 남겨두고 싶다.
당신이 오늘 집에 도착한 것은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 아니라,
아무 일 아닌 척하면서도
끝내 자기 생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그리고 어떤 날의 용기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끝내 내일도 살아보자고
아주 작게 생각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용기를 믿는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하루를 끝내 건너는 사람들,
울지 못한 슬픔을 안고도
다음 날 다시 길 위에 서는 사람들,
돌아가는 길이 늘 혼자였지만
그래도 계속 돌아와 준 사람들.
그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아직 덜 무너진다.
그러니 오늘도 겨우 돌아온 당신에게
늦었지만
이 말을 꼭 남기고 싶다.
정말,
잘 왔다.
댓글목록
하늘에게님의 댓글
배워보고싶네요. 이 소중한 공간에다 시를 보는이들에게 불빛을 주셔서 고맙게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