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12月 11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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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12月 11日
맑았다.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바람이 좀 불고 먼지는 없는 조금 추운 날씨였다.
오전 08시 50분에 출근했다. 직원 忠과 智가 있었다. 忠과 智와는 20년 차이다. 20년 전을 생각하면 엊그제 같아도 시간은 아득하게 지나갔다. 앞으로 20년은 또 어떻게 흘러 갈 것인가?
오전, 울진 더치커피 공장에서 볶은 커피 60봉 주문을 받았다. 가맹점 옥곡에서 커피 주문이 들어왔다. 서울 기계를 다루는 곳에서 산레모 피* 제품이 염가로 들어온 게 있어 받으라는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아직 전쟁에 대한 불안 심리가 가시지는 않았다. 한미 군사훈련 기간 동안 북한 김정은은 북, 중 인접 지역인 공장사찰에 임했으며 백두산에도 올랐다고 북한 방송은 얘기했다. 미군 스텔스기가 평양을 습격하는 데는 단 15분이면 충분하다고 했으니 지레 겁먹은 것도 사실이겠다. 그러나 우리의 주식시장은 여전히 불안하다. 외국인은 며칠째 주식을 팔아치웠으니 말이다.
외국 정보 소식통은 전쟁의 임박도 두 달여 시간밖에 없다고 했다. 이는 북한이 핵을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북한은 처음부터 미국을 겨냥했다. 미군이 주둔한 일본과 괌까지도 포함한다면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북핵은 생각보다 미국 시민에게는 위협적이었다. 여론이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으며 전쟁의 수위도 점점 높아만 가고 있다.
이러는 와중에도 현대전은 속전속결이다. 얼마만큼 빠르게 우리 쪽 피해 없이 이 전쟁을 끝내려고 하면 선제공격밖에는 없다. 미국은 그냥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고 북한 정권이 일망타진되었다고 하면 그다음은 또 어찌 되는가? 중국과 러시아는 과연 보고만 있을까? 평화적 통일을 기대했지만, 무력으로 북한 정권을 전복시켰다면 말이다.
북한은 계층이 완전히 두 분류로 나누어진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권력을 잡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 김정은이가 북한의 현 체제를 통제할 방법은 오직 하나, 공개 처형을 통한 공포정치와 핵미사일개발을 통한 구심력 확보뿐이다. 어느 쪽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 됐다. 북한은 이대로 쓰러질 것인가?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오늘 “북한은 지금 로켓 발사 실험을 하면서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흥분하지 말고 방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북한이 만약 미국을 공격한다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오후, 옥곡점에 커피 배송 다녀왔다.
저녁에 화재 보험 일 하시는 이모님께서 조감도에 오셨다. 5년 전에 넣었던 본점과 본부 건물 화재보험이 내일 만기다. 내일부터 다시 본점과 본부 건물을 기간 5년으로 하여 화재보험에 가입했다.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올 초였다. 대구 달성군 하빈면 모 교회에 기계 설치한 일 있다. 기계가 고장이 났는지 차단기가 자꾸 내려간다는 전화다. 내일 가보아야 맞지만, 수리 일을 모레로 미루었다. 내일 어머님 모시고 병원에 가야 하므로 어쩔 수 없었다. 서울 본사와 얘기해서 대구 쪽 수리기사를 보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이 내려가면 출장비를 줘야 한다고 한다. 그 비용이 15만 원이라 한다. 교회 사모님께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모레 오라 한다.
윤*현 선생께서 쓰신 ‘고조선 연구 하’를 읽었다. 제3장 고조선의 사회와 풍속을 읽었다. 그 두 번째 단락 ‘고조선 사람들의 의식주와 풍속’ 이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고조선 사람은 큰 소매가 달린 두루마기 같은 겉옷을 입었다. 목의 깃 등은 둥글게 곡선을 이용했으며 흰색을 즐겼다. 팔에는 토시를 착용했고 머리에는 모자를 썼다. 그 모자는 신분에 따라 달랐다.
고조선 사람은 옷감으로 삼베, 모직, 명주 등을 생산했다. 고급 모피 의류도 생산했지만,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했다.
고조선 사람은 음식을 먹거나 마시는 데 대나무로 만든 변이나 나무로 만두 두, 흙으로 만들어 구운 여러 종류의 질그릇을 사용했다. 숟가락도 사용했다.
고조선의 음식은 벼, 보리, 조, 기장, 콩, 팥, 수수, 피 등의 오곡이었다. 이외에 산나물, 바다 생산물, 멧짐승, 집짐승 등도 있었다.
고조선 사람은 소금을 조미료로 사용했다.
고조선 시대에 난방 시설이 도입되었으며 후기 때 온돌이 등장했다.
고조선의 마을은 가족공동체가 기초가 되어 형성된 씨족 마을이었고, 씨족 마을들은 고조선의 국가 조직과 사회 구조의 기초가 되어 있었다.
가족 공동체가 잘 유지되기 위해서는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가 견고해야 한다. 이런 관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한 내용이 당시 사회의 도덕윤리나 법의 기초가 되어 있었다.
고조선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이는 유교의 덕목으로 알고 있지만, 한민족은 유교를 수입하기 전인 고조선 시대부터 효도와 충성을 도덕과 윤리의 가장 기본 되는 덕으로 삼고 있었다.
고조선은 신분제와 재산 사유제가 확립되어 있어서 구성원들 사이에 신분이나 빈부의 차이가 있었지만, 차별의식은 심하지 않았다.
고대사회는 종교가 사회를 지배했다. 고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조선이 건국된 후 최고의 신은 하느님이었지만, 이외 여러 신을 섬겼다. 단군사화에 보이는 곰이나 호랑이,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는 호신부 등은 이런 신을 상징한다.
고조선 사람은 신의 뜻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점을 치기도 했다. 고조선의 청동기는 청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 치렛거리 등이 주류를 이룬다. 이점은 중국과 다른 점이다. 중국은 청동무기와 술잔, 술통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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