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12月 16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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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12月 16日
맑았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 대학교를 찾아 한중 관계의 길을 연설했다. 중국인을 치켜세운 연설은 꽤 괜찮았다. 국가 간의 관계도 개인과의 관계와 별반 차이가 없음을 본다. 왕안석의 시 명비곡의 한 구절인 ‘인생락재상지심(人生樂在相知心)’과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는 얘기 즉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렸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정상외교는 약간은 굴욕적인 면도 없지는 않았다. 기자 폭행 사건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중국과의 역사와 전통은 크게 변하진 않은 것 같다. 치우족(蚩尤族)과 황제족(黃帝族)과의 결투, 고조선과 한, 고구려와 수, 당과의 관계, 조선과 명, 청을 이어 다시 대 한국과 중국이다. 동북아의 평화와 이를 바탕으로 공존과 번영을 모색하는 길이다. 북한이 쇄국적인 태도를 저버리지 못하니 우리는 백제식 경영을 해온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바닷길을 모색했다. 만주와 요동 더 나가 숙신의 고장 연해주까지 그 진로를 터야 할 것이다. 국가 경영도 고구려식 경영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내년 경기는 여러 지표로 보아도 그렇고 세계 경제 전문인의 말을 들어 보아도 그렇다. 올해가 최대의 호황을 누렸다는데 연말 분위기는 서민에게는 힘겹기만 하다. 이런 와중에 내년 경기는 장담할 수 없다는 전문기관의 말은 희망마저 잃게 한다.
우리 대통령께서 이번 방중은 여러모로 그 의미가 깊다고 나는 본다. 정말 수고하셨음이다.
촉
기본이튼튼하면 언젠가뜬다
파도는내려가면 다시오르니
서프보드타듯이 균형을잡자
몰고오는대군단 그중심읽자
맹수처럼헐어도 가만히있자
도시처럼채워도 그대로있자
오로지태양처럼 이글거리자
긴어둠이끝나면 백로뿐이다
토요 커피 문화 강좌를 개최했다. 오늘은 새로 오신 선생도 없었고 기존 교육 받으시는 선생도 없었다. 10여 분 기다리니 한 분의 선생이 오셔 수업 시작했다. 오늘은 에스프레소 교육했다.
경기가 너무 좋지 않아 오지 않나 보다 했지만, 연말이라 모두 모임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아침은 국밥 집에서 먹었다. 점심과 저녁은 집에서 먹었다.
오후 다섯 시, 조회했다. 직원 仁이 건강상 이유로 잠시 비고 나서 카페는 잠잠하게 흐르나 싶었다. 복장문제와 위생문제 그리고 근무시간을 두고 점검했다. 휴일을 몰아서 쉬는 것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확인했다. 앞치마는 꼭 매어야 한다. 위생 관련 상 보건소 일은 보았는지 확인했다. 직원 義와 信은 며칠 전에 다녀왔으며 직원 忠은 이미 보건증을 받아 철에 두었다.
저녁, ‘고조선과 북방 및 일본의 문화 교류’를 읽었다. 고조선과 북방 지역의 문화 교류는 구석기시대부터 계속되었다. 최남선의 불함문화론 외 다수학자의 정론과 이견을 읽었다. 고조선은 북방에서 흘러온 문화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체 발원하여 전파했을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했다. 학자마다 이견이 많아 모두 정리할 수 없다. 그저 느낌만 받는다.
고조선은 농경문화였다. 그 외 북쪽은 유목 지역인데도 있었다. 구석기와 신석기를 거쳐 청동기 철기를 오랫동안 다져온 문화다. 이에 반해 일본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문화가 일시적으로 건너가 이룩한 야오이 문화를 읽었다. 타지에서 받아들인 문화라 보기에는 고조선과 너무나 흡사했다. 유적과 유물이 대신 답해주고 있음이다. 이외 일본의 건국신화도 고조선과 가야 문화와 흡사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전에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통일신라 시대의 경주가 가깝다고 적었다. 일본어는 아무래도 고구려나 백제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며 추측했다. 중국의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신라는 외교활동으로 사신이 중국에 건너간 일 있지만, 그 통역인은 백제인이었다고 쓴 글을 읽었다. 그러니까 고구려, 백제, 신라는 언어가 비슷했을 거라 본다. 지방마다 방언의 차이는 있을지는 모르나 거의 같았을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는 건국 신화에서 보듯이 모두 부여에서 출발했으므로 형제나 다름이 없다. 신라가 동떨어진 문화를 가졌다고 하나, 고조선의 거수국이란 점을 감안하면 모두 한 민족이었던 셈이다.
시인의 말
커피 배송 다녀오는 길이었다. 춘추가 나보다 많은 점장께서 운영하는 커피 집이었다. 선생은 내 글을 읽고 글을 써야겠다는 충동감이 일었다고 했다. 그리고 펜을 잡았다. 막상 펜을 잡고 보니 글은 글이 아니었고, 하늘만 새카맣다고 표현했다. 살아온 연륜은 쓰고 싶은 글감보다 많아 마음은 봇물 터지듯 했지만, 어처구니없이 한 줄 나오지 않았다.
역사에 남은 인물의 일기를 언제 본 적 있다.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 단문이었고, 주술이 뚜렷했다. 하루 중요 사건만 기록했다. 가령 ‘날씨가 맑았다’거나 ‘식사를 했다’거나 ‘식사 후 속이 편치 않았다’는 둥 그러니까 가볍게 적는 연습이 중요하다. 식사 후 그릇을 닦듯 하루 담았던 그 때를 벗기는 일은 쉬운 것 같아도 쉽지 않다.
하루가 시작하면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 들어간 기분처럼 그 하루를 맞는다면 글은 어렵지 않다. 나는 그렇게 써 왔다.
이번 ‘까치의 하루 鵲巢察記 8’을 묶었다. 하루 있었던 일과 중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나마 지울 수 없었던 일이었다.
2017년 12월 15일
이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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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gs7158님의 댓글
오로지 태양처럼 이글거리자...멋진 글입니다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