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11月 28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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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11月 28日
맑았다.
오전 7시에 일어나 병원에 나섰다. 경산 중*병원은 경산 시에서는 제법 큰 병원이다. 건강검진센터를 따로 두어 운영한다. 어제 처음 알았다. 건강검진을 받는 분이 꽤 많음도 오늘 알게 되었다. 7시 30분쯤 왔으니까 제일 일찍 오지 않았을까 싶어도 벌써 앞에 10명이 순번을 뽑아 기다리고 있었다. 창고는 8시부터 영업을 시작했고 검진은 9시에 시작했다.
혈액, 소변, X-선 촬영, 심전도, 구강 검사, 마지막으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일부는 의사 선생으로부터 진찰내용을 들었으며 일부는 검사가 나와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항상 병원에 오면 내 몸에 무언가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오늘 검사 내역은 괜찮았다. 혈액과 소변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점심을 처가에서 먹었다. 오늘 처가는 김장을 한다. 처형, 처수, 처가 어른과 조카 炳도 와 있었다. 점심은 돼지고기 수육에 갓 담은 김치를 곁들여서 먹었다. 고기는 방금 삶아 내어 아주 맛있었다. 마루에 절인 배추를 쌓아두고 양념은 아주 큰 고무대야에다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한 포기씩 버무리는 모습을 보았다. 아내와 처가 식구가 김장하는 모습만 보고 나왔다.
압량 면사무소에 잠깐 다녀왔다. ‘가족관계증명서’ 한 통 떼었다. 둘째가 휴대전화기가 고장이 나, 새것으로 바꿨다. 가족 형 상품이라 통신 요금이 싸다고 했다.
저녁, 동인 모 형께서 조감도에 오셨다. 커피 한 잔 나눠 마시며 여러 담소를 나누었다. 시는 사람마다 읽는 의미가 다르다는 말씀과 시는 예술적인 면을 갖춘 것도 중요하지만 소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다.
저녁 윤*현 선생께서 쓰신 ‘고조선 연구 상’ 읽었다. 제3장 고조선의 강역과 국경 그 두 번째 단락 ‘고조선 시대의 패수’를 보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패수는 특정한 강의 고유한 명칭이 아니라 여러 강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음을 이 책은 밝혀 놓았다. 옛 문헌의 기록을 보면 요동군 번한현의 패수, 낙랑군, 패수현의 패수, 낙랑군 누방현의 패수 등이 있었고, 대동강, 예성강, 어니하(헌우락)도 패수로 불렀다. 이처럼 여러 강이 패수라는 명칭을 갖게 된 것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사용되었던 강이라는 말의 고대어인 펴라, 피라, 벌라가 향찰식으로 기록되면서 패수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고대의 요동은 지금의 요동과 위치가 달랐다. 고대에 일반 의미의 요동은 지금의 난하 유역과 요서 지역을 포괄한 지역이었으며, 진 제국 및 서한제국의 행정구역이었던 요동군은 갈석산 서쪽의 난하 하류 유역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난하 유역의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 지역이었다. 그러므로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는 이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고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이루었던 패수가 지금의 난하보다 동쪽에 위치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어떤 책을 읽든 어떤 글을 쓰든 다 소용없는 일이다. 글은 거저 자기성찰이다. 주위 좋은 글을 쓰시는 선생이 많으면 좋은 것이고 한 권의 책이라도 사서 읽어 마음이 편안하면 더없이 좋은 것이다. 삶에 글로 집착할 필요가 없으며 글은 오로지 취미로 다루면 좋고 전문적으로 쓰는 직업관을 가져도 좋지만, 그 이상 바라지도 마라야 한다. 글의 명예라든가 富라든가 그 어떤 것도 바라지 말아야 하며 글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말아야 하며 혹여나 여의치 않아 얼굴이 세상에 알려진다 해도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한 줄 글귀처럼 나를 다듬는 것으로 사는 보람으로 여겨야 한다. 진정 글만큼 좋은 친구가 없으니 글과 친구처럼 하루를 대하였으면 그 하루 충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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