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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11月 22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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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649회 작성일 17-11-22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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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1122

 

     꽤 흐린 날씨였다. 눈이라도 내릴 것 같았지만, 오지 않았다.

     날씨도 흐렸지만, 오늘 하루는 조용하게 흘렀다. 차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뉴스다. 미국 무역위원회는 삼성과 LG에서 생산한 세탁기 120만대 초과 물량에 50% 관세를 매기겠다는 얘기다. 이런 와중에도 삼성과 LG 관련주는 일제히 올랐다.

 

 

     면 (면에서 면에 면까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판별하는 얼굴은

     오천 명 안팎

     우리 일면식 있죠

     면에 사니까

     면면이 있는 사람

     모이면 면발

     초상이나 결혼은

     국수 먹는 날

     그러니까 면발도

     먼저 보아야

     선다니깐

     스치는 한 면 또 한 면

     면을 봐야 면한다

     덮으면 수면

 

 

     예전에 면은 아주 크기만 했다. 초등학교도 면 소재지 근방에 있었고 면 아래 동네는 여럿 있었다. 내가 살았던 그러니까 지금 내 고향 동네는 외부에 많은 사람이 몰려와 살고 있다. 면은 읍으로 승격됐다. 아파트가 꽤 들어서고 확실히 예전 면보다는 좀 더 밀집한 형태를 띤다. 동도 여러 개 더 생겼다. 지금은 고향에 내려가도 모두 일면식 있는 사람보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지금 경산도 마찬가지다. 경산은 시(). 여기는 고향보다 더 복잡하다. 여기 산 지는 20년 아니 30년이 다 되어간다. 뿌리가 없으니 늘 만나는 사람도 늘 새롭다. 심지어 아내까지 새롭다. 어휴, 이제는 늙어도 생각까지 늙어서는 안 될 텐데, 세월은 이리 빠르게 흐른다. 무언가 해야 하고 무엇을 이루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만, 요즘 도무지 그 기회를 찾기 어려울 뿐이다.

 

     저녁, 고조선 연구의 필요성과 방법을 읽었다. *현 선생께서 쓰신 고조선 연구 상이다. 첫째 사회와 문화 발전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다. 예를 들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신라와 고구려의 건국 연대를 참고하여 서기전 1세기 무렵으로 본다면 고조선은 무려 2,300여 년 동안 존속한 것이 된다. 이렇게 오래 존속했던 고조선 사회와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그 후의 한국 사회와 문화 전체를 낮게 인식하는 큰 오류를 범하게 된다. 둘째 한국 사회와 문화의 특수성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고조선의 존속 기간은 2,300여 년이라는 매우 긴 시간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경우 한 왕조의 존속 기간은 고작 200~300년 정도다. 이것은 고조선만 국한 되는 것도 아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약 700, 고려는 500, 근세조선도 500년의 역사를 지녔다. 우리의 지배층은 중국에 비해 검소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고조선이 가지고 있던 고대 사회의 특징은 고조선의 뒤를 이은 여러 나라 시대까지로 마감되고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는 새로운 성격의 사회가 등장하므로 사국병립시대부터는 중세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윤*현 선생은 강조했다.

     근래 연구에 의하면 고조선의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이었다. 서쪽으로는 북경(北京) 근처의 난하(灤河) 유역에 이르렀고 북쪽은 아르군 강, 동북쪽은 흑룡강(黑龍江) 유역, 남쪽은 한반도 남부의 해안선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조선은 서기전 24~23세기 무렵에 건국되어 서기전 1세기 무렵에 붕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은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한반도와 만주에서 발견된 이 기간의 청동기와 초기 철기의 유적과 유물은 모두 고조선의 것이 된다.

     고조선 연구의 방법

     첫째, 선입관을 버려야 한다. 예를 들면 요동과 요서라 하면 지금의 것과 다르다. 그 위치나 개념이 변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조선 시대는 난하가 요하였다.

     청동기문화의 개시 연대를 보면 황하 유역은 서기전 2,200년 무렵이고 고조선 지역과 문화적으로 관련이 있는 시베리아의 카라수크문화는 서기전 1,20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그러나 고조선 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서기전 2,500년 무렵이다.

     둘째, 공정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청동기는 지배층의 유물이다. 중국은 고조선보다 그 양과 다양성은 훨씬 많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회 전체의 수준이나 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셋째, 사료의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 중국 문헌에 나타난 여러 기록들에 의하면 위만조선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지금의 요서 지역에 있었고 진국 역시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지금의 요동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에 따르면 역계경이 위만조선으로부터 동쪽의 진국으로 갔다는 위략의 표현은 옳다. 사료의 내용을 바꾸어 읽음으로써 위만조선과 진국의 위치에 대한 인식까지 오류를 범한 하나의 예인 것이다.

     넷째, 사료가 말하는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읍루가 출현하기 전인 서한(전한)시대와 그 이전의 기록들을 보면 숙신은 지금의 난하 유역에 위치해 있었다. 읍루와 숙신은 위치가 동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르므로 읍루는 옛 숙신의 나라이다.” 라는 기록은 지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 지배층이 동일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읍루는 옛날 숙신 사람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뜻이다. 이 기록은 숙신 인들이 난하 유역으로부터 동쪽의 연해주 지역으로 이주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숙신은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다.

     다섯째 중국과 일본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참고할 때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은 고대부터 다민족 국가였음을 매우 강조하는 추세다. 일본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고조선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여섯째 통계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요서 지역에는 중국의 상시대보다 훨씬 앞선 시기부터 황하유역의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하가점 하층문화라는 청동기문화가 있었고, 이 청동기문화는 비파형동검문화로 발전했는데, 비파형동검문화가 출현한 것은 중국의 상시대 초기에 해당한다. 비파형동검문화는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던 문화였다. 요서 지역의 일부 유적에서 출토된 상 말기나 서주시대의 청동기는 이 지역의 토착문화도 아니었고 출토된 전체 유물에서 볼 때 그 비중도 극히 낮다. 따라서 이 유물들에 근거하여 지금의 요서 지역이나 만주 전 지역의 문화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이 유물들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이 유물들은 중국의 이주민들이 가져온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일곱째, 복원과 해석을 위한 이론 틀이 필요하다. 인류문화는 구석기새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하나의 이론 틀이다. 역사의 발전과정을 원시공동체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등으로 보는 것이라든가, 초기 인류 사회의 진화 과정을 무리사회, 부족사회, 추방사회, 국가사회 등으로 보는 것도 하나의 이론 틀이다.

     하느님과 그 아들로 표현된 환인과 환웅은 하느님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씨족을 대표하거나 상징하는 인물이고, 곰은 곰을 수호신으로 숭배했던 씨족을 말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환웅과 웅녀의 결혼은, 하느님을 숭배한 씨족과 곰을 숭배한 씨족이 결합하여 하나의 큰 세력이 되었음을 알게 해준다고 설명한 것이다. 고대에 씨족 간의 결합은 주로 통혼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환웅족(桓雄族)과 곰을 믿는 웅족(熊族)의 족장들 사이에 통혼이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또 단군사회의 내용 가운데 그 중심이 된 종교사상은 하느님 숭배이며 곰 숭배는 그 밑에 종속된 것이라고 설명할 것이다.

 

     읽은 던 부분을 마감하며 어제 본 영화를 생각한다. 청을 세웠던 누르하치는 북방민족이다. 다시 말하면 동이족이다. 중원벌판을 쥐고 흔들었던 황제의 대부분은 동이족이었다. 힘을 앞세워 중국을 지배했을지는 몰라도 한족의 문화는 잡지 못했다. 청은 정권을 잡고도 한족에 예속되었다. 지금은 그들의 말까지 잃어가고 있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간다. 동북아의 문화를 누가 쥐고 가느냐는 그 전파 속도에 달렸다. 앞이 탁 막힌 세상은 어쩌면 큰 장벽이다. 우리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통일이 앞서야 한다.

 

     저녁 늦게 시지 카페 우드에 커피 배송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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