鵲巢日記 17年 10月 28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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鵲巢日記 17年 10月 28日
날씨 꽤 좋았다. 오후 조금 흐리기는 했어도,
오늘 서울 저 위쪽은 동인 모임 한다. 여러 사정으로 가지 못하다.
아침 토요 커피 문화 강좌 개최했다. 새러 오신 선생도 여섯 분이나 되었으며 참석한 선생은 모두 이십 명은 넘었다. 정확히 스물세 명, 우리가 마련한 자리는 십여 석뿐이라 몇몇은 창가 소파에 앉았고 몇몇은 스탠드 의자에 몇몇은 서서 들어야 했다. 요즘 이상하게도 사람이 많이 몰린다. 바깥은 무언가 큰 변화가 일고 있다는 얘기다.
교육생 모 선생이었다. 연세도 지긋하지만, 말씀도 예사로워 몇 마디 여쭈었다. 역시나 대학교 교편 잡으셨다가 정년퇴직하셨는데 커피와 샷잔 그리고 드립과 관련된 여러 가지를 사가져 가셨다. 선생은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사모님과 함께 마신다고 했다. 사모님도 옆에 계셨는데 두 분 모두 커피를 좋아한다.
또 어느 교육생은 커피와 핸드-밀을 샀다. 또 어느 선생은 나의 책 ‘커피 향 노트’와 ‘찔레꽃 앉은 하루’를 사셨다. 오늘 교육받으신 분이 많아 커피와 커피용품도 꽤 나간 하루였다.
오전, 정문출판사에 다녀왔다. ‘鵲巢察記 6’ 표지 작업을 했다. 지금껏 했던 방식을 조금 바꿨다. 간판 글자는 전은 세웠다면 이번은 눕혔고 전은 밑바탕이 밋밋했으면 이번은 鵲巢察記라는 한자어를 여린 먹으로 해서 가로로 크고 굵게 배경을 깔았다. 6권부터 10권까지는 이 모양으로 해나갈까 한다. 鵲巢察記 시리즈는 10권까지가 전부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기획한다.
촌에 다녀왔다. 어머님 드실 우유 몇 병 챙겼다. 아버지께서 지은 농사, 햅쌀 여섯 포를 실었다. 햅쌀 20kg 1포 45,000원은 받아 달라며 어머님은 부탁한다. 주위 지인에게 문자로 여러 알렸지만, 작년보다 주문은 뜸하다. 묵은쌀 이십 킬로는 햅쌀에 반값이라 주문하기가 그럴 같다는 생각이다. 서민 경기는 별 나아진 게 없어 더욱 힘들겠다. 이러한 시기에 햅쌀을 사겠나 싶다. 식당 크게 하는 후배도 작년은 언뜻 달라고 하더니만, 올해는 영 답이 없다. 부담인 게다. 차에 여섯 포 실었지만, 아버지께 용돈 삼아 더 드리기 위함이었다. 여섯 포 중 한 포는 카페 우드에 드렸다.
인사人事
어둠이내게올때 강가에앉아
흐르는물을보고 느껴야겠다
물스치며지날때 나그위에서
보는것같아도물 따라흐르지
새벽은오고넓고 긴강따라서
바다닿으면돌고 돌아가는길
구름되고비되고 바람길닿는
몇겁이되어다시 물로흐르나
촌에서 어머님 해주신 국수 한 그릇 먹었다. 잠시 쉬고 가려고 방에 누웠는데 내가 코를 골고 있다는 것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전에는 코 고는지도 모르게 잠깐 잠이 들곤 했는데 이제는 코 고는 소리가 스스로 들으며 눈 감으니 말이다. 언뜻 깨니 어머님은 한 오 분 잤다고 한다. ‘엄마 내 코 골았제?’ ‘그래, 너 깰까봐 말도 못했다.’ 깨고 나니, 머리가 꽤 맑았는데 마치 TV on-off 스위치를 한 번 껐다가 켠 것 같은 느낌이다. 대구 오는데 한 번도 졸지 않아 운전하기 참 편했다.
조감도 오후 여섯 시가 다 되었을 때다. 직원 仁과 개인 면담이 있었다. 오늘 아침은 병원에 지난번 받은 정기검진 결과를 보기 위해 다녀오기도 했다. 좋은 소식을 받지 못했다. 仁의 보고에 마음이 아프고 슬펐지만, 조기에 발견한 거라 큰 다행히 아닐 수 없다. 수술과 치료를 받고 나면 낫는 병이니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에 마음 몹시 무거웠다.
윤내현 선생께서 쓰신 ‘한국 열국사 연구’ 읽다. 오늘은 고구려의 건국과 연대를 읽었다. 고구려라는 이름은 서기전 12세기 전부터 존재했다. 이때는 중국의 서주시대까지 오른다. 당시 고구려라는 국가는 고조선의 거수국으로 보아야 한다. 이후 기자조선과 위만 조선이 들어서고 한 무제의 침략과 한사군 설치는 고구려의 지배층과 일부 주민들은 동쪽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결과 고구려족은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다. 흩어져 살아도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난하 하류 유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수맥이라 불린 구려족(句麗族), 오늘날 요하 서부 유역으로 추정되는 현도군의 고구려현, 오늘날 요령성 남부해안 수중과 전위 사이에 있는 고려하와 고려성지 등은 바로 그러한 연유로 고구려족이 남겨놓은 이름이다.
추모왕이 건국한 고구려는 705년 동안 존속했다. 추모왕은 북부여에서 이주하였지만, 또 북부여에서 출생한 것도 사실이지만, 부여족은 아니었다. 그의 어머니는 하백의 딸 유화였고 아버지는 스스로 해모수라 청했다. 해모수는 ‘해머슴아’ 즉 ‘일자(日子)’라는 뜻으로 고조선의 단군을 해모수라고도 불렀다. 그러므로 추모왕은 단군의 혈통을 이어받았음을 알게 한다.
댓글목록
오영록님의 댓글
뵙지못해아쉬웠네요ㅡㅡ가을처럼 풍상하시길 ㅡ
鵲巢님의 댓글
모임 참석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선생님
다음에 기회를 내 보께요...
단풍 처럼 좋은 하루였길 바래요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