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을 축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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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야쿠르트를 통해 친구가 되었다가 야쿠르트를 그만둔 친구가 팔이 다쳤다고 병원에 입원을 했다. 혼자서 고등 학생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그녀가 다쳐서 일을 못하면 생계는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되어 일을 마치고 병문안을 갔다. 웬만하면 헐렁한 환자복이 몸집이 드러나도록 끼이는 그녀는 여전한 흰머리와 푸석푸석한 모습이였다. 난 그녀가 듣기 싫어해도, 내 살도 어쩌지 못해도 그녀에게 살을 빼라고 듣기 싫은 소리를 꼭 하는 것을 진정한 친구의 도리처럼 여기는 것 같다. 넘어졌다고 해서 팔이 부러진 것도 그녀의 육중한 몸무게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토끼풀이 제멋대로 무성해진 병원 마당 바위 위에 앉아 나는 그녀가 건내주는 담배를 받고 어쩔 줄 몰랐다. "야쿠르트 아줌마는 담배 피우면 않되" "그냥 피워! 일 마쳤으니까 야쿠르트 아줌마의 사생활이야" 나는 그녀가 켜 주는 불을 담배에 지피고, 입담배를 피웠다. 그냥 못 피워! 그러면 그녀가 흥이 깨질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것 같다는 그녀의 믿음을 깰 것 같기도 했다. "야! 누가 너보고 아프라고 그랬니? 복 없는 년은 아플 자격도 없어! 어쩔거야? " "로또 된 것 같다! 산재처리 될 것이고 난 석달이나 놀 수 있어!" 콧구멍으로 새어나오는 그녀의 담배 연기가 멋있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 그녀는 석달 동안 죽지 않는 병에 걸려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돈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그렇쟎아도, 어깨도 아프고 온 몸이 쑤셔서 일주일만 좀 쉬면 살 것 같다 싶었는데..ㅋㅋㅋ 진짜 좋다!"
나는 담배를 깔고 앉은 바위 모서리에 비벼 끄는 그녀를 데리고 가까운 식당을 찾아갔다. 뭐 맛있는 것이라도 사먹일 참이였다. 불족발, 매운 닯발, 곱창 전골 집을 그냥 지나쳤다. 명태찜이 맛있게 그려진 식당앞에 멈춰서서 바로 옆집의 불닭발 집을 두고 망설이다 명태찜 집에 들어갔다. 소주를 마셨다. 내가 거의 세병을 비웠다. 소주 세병이 내 피를 타고 몸속으로 번지자 병문안을 받아야 할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나 인 것 같았다. 축하한다고 했다. 일 하지 않아도 돈이 나오다니, 그건 전생에 나라 꽤나 구한 금수저들에게나 있는 행운인데 부럽다고 했다. 그녀는 말했다. "너도 제비다리라 생각하고 니 팔 분질러라" 우리는 웃었다. 우리는 사대보험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밥값이 5만원 나왔다. 계산을 하면서 밥을 먹지 말고 그냥 봉투에 넣어줄 걸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했다. 팔 부러져 병원에 입원한 걸 로또 복권 당첨 된 것처럼 여기는 친구에게 아무 남는 것도 없는 밥술을 먹여 미안했다. 사실 아주 오래 전, 밥벌이 하느라 일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어디가 아팠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냥 쉬려니 내 팔자에게 미안하고, 몸은 무쇠로 만들었는지 어디 한군데 나쁜데가 없고, 정신병원을 찾아 갔었다. 그리고 우울해서 죽겠다고, 자꾸 죽고 싶다고 말하고 의사에게 3일 입원하라는 진단을 받고 3일 병원에 입원 한 적이 있었다. 삼일이 꿀맛보다 달았다. 그런데 석달이라니, 난 그녀의 쾌재를 이해한다.
난 내 안의 일은 잘 모르지만 아직 이렇다할 병은 없는 것으로 알고 산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후 여섯시가 넘도록 잠 한 숨 자지 않고 일을 해도 그다지 힘든 줄도 모르겠다. 지금 나의 생각은 그렇다. 내가 죽을 때 아이들이 얼마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삶에서 아무런 소망도 소원도 없다. 예쁜 옷을 입고 싶지도 않고, 더 좋은 집에서 먹고 자고 싶지도 않고, 사람들이 내 나이에 바라는 아무것도 나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조금 덜 힘들기를 바란다. 부모라고 있으면서 아비는 빚만 남기고, 암으로 죽고, 어미는 재혼을 해서 일이 만원 푼돈을 쓰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무엇이라고 얼마라도 물려 받을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돈이 나오는 보험도 하나 들었다. 아비가 죽고, 상속포기 각서를 쓰느라 한 달 내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큰 아이에게 미안하다. 어차피 한 때는 부모로 묶였던 인연이라 그의 잘못이라고 쉽게 미뤄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보는 것이 챙피해서 내 구역에서는 도시락을 먹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남강변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다. 김밥 한 줄을 사먹어도 최소한 2천원이다. 내가 보험을 든 것을 알면 남편은 또 노발대발 할 것이다. 내 점심값, 차비 아껴서 하루에 삼천원만 제끼면 보험을 들 수 있다. 좀 더 열심히 해서 가능하면 하나 더 들어서 큰 아이 하나 작은 아이 하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나는 더 누리고 싶은 것이 없다. 마음대로 떠돌아 다녔고, 시를 쓴답시고 볼 꼴 않볼 꼴 다 보아 별로 궁금한 것도 없다. 50살이면 내 평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그간 시 쓴다고 아이들에게 지은 죄를 갚으며 살고 싶다. 시?
만원에 맞춰 산 신발이 너무 커서 걸을 때마다 엄지 발가락에 힘을 준다. 벗겨지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생존만 해도 된다. 십년을 열심히 살면 60살이다. 60살이 넘어도 내가 계속 돈을 벌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돈을 벌 수 있을 때 벌어놓고 죽어야 겠다. 그 돈으로 아이들이 손톱 만큼이라도 더 사는 일이 힘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더 살고 싶은 인생이 없다. 부족한 것도 불편한 것도 없다. 나는 정말 다 살아버렸다.
암이나 중병에 걸리지 않고, 흥부의 제비 다리처럼 팔만 부러진 그녀에게 꽃다발이라도 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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