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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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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진흙피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1회 작성일 23-05-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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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노릇, 


명태전이 노릇노릇,

부추전도, 산적도, 생선도

노릇노릇

사람도 익으면 노릇, 노릇을 한다

엄마 노릇, 딸 노릇, 며느리 노릇,

사장 노릇, 알바 노릇, 친구 노릇

노릇, 노릇은

명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사람이 익은 모습,

사는 일은 사람이

노릇, 노릇 하게 익어가는 일

느긋하게 불을 낮추고

찬찬히 들여다 보고

마음이 골고루 닿도록 뒤집어 주고

따뜻할 때 내어 주는 일,

노릇, 노릇 못 하면

기가 찰 노릇

섭섭할 노릇

서러울 노릇,


역할, 의무, 본분 같은 말을

따끈하게 달궈진 팬 위에 쏟아 붓고서야

가쪽 부터 가운데로 익어가는 경지


내가 사람 노릇하고 살도록

제 심장 데여가며 가슴을 달궈놓고

여지껏 기다려 준 사람들


참 고맙다.





오랫만이다. 시여! 

머리카락이 다 빠진 라푼젤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첨탑의 창살 밖으로 내밀어 보는 기분이다.

내가 앉은 벙크 침대의 창 밖으로는 거의 구십이 다 되었다는

노인이 새벽마다 어김없이 나와서 밭을 돌본다.

사람들은 영감이 귀가 먹고 치매가 왔다고 하는데

노인에게 그 밭은 그 시간에 만나기로 한 애인 같은 존재다.

애인 같은 것이다, 라고 쓰려다 애인 같은 존재다 라고

쓴 것은 것은 그 노인의 애착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지만 존재는 노인의 애착에 대해 살아 있는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와 무관하며 상호 관계할 수

없는 것은 존재라 하지 않고 것이라고 나는 표현한다. 

시가 내게 그 노인이 돌보는 밭이였던 적이 있었다.

자나 깨나 시를 생각했고, 자나 깨나 시에게로 와 있었다.

그 무렵 시는 내게 존재였다 시는 나에게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깨어 있는 시간이 모자라 잘 때도 시를 생각했었다.

나는 시에 대해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 그저 시 자체가

목적이였다. 시와 사랑에 빠졌고, 시는 내게 팜므파탈 같았다.

나는 기꺼히 파멸 되었고, 파괴 되었으며 파열 되었다. 시는 내게

성령 같기도 했다. 내가 시에서 벗어난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시는 내게 끊임없이 시에게로 돌이키라고 속삭였다. 그러던 어느날

부터인가 시가 나를 떠났는지, 내가 시를 떠났는지 알수없게 되었다.

몇 년이 그렇게, 서로 잊은듯이 흘러갔다. 별다른 실마리도 없이

기억상실증에서 문득 깨어난 사람처럼 나는 시를 떠올렸다.

아! 그래, 나는 시를 쓰고 살았지. 어쩐 일인지 그렇게 살았지,

시 쓰는 사람 말고, 나는 아무도 아니였지. 나는 아무도 모르는

시인이였지만, 시인 말고는 정말 아무도 아니였지. 


이젠 잠이 온다. 오늘은 문득 벽은 온통 하얗게 칠해버렸다.

독일 냅킨 명화들은 구질구질한 기억들처럽 내가 칠한 페인트에

다 묻혀버렸고, 창틀을 필름처럼 에워싼 고호와 한쌍의 홍학,

세잔의 꽃 그림,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없는 달맞이 꽃만

남겨 두었다. 갈치상자로 만든 화장대는 흰색과 초록색을 섞어

만든 소라빛으로 칠했다. 고양이 발코니 두 개도, 원목 파티션

테두리도 소라빛으로 칠했다. 손가락 끝이 소라색과 흰색 페인트와

아크릴 물감으로 떡이 졌다. 역시 행복이란 언어가 만든 신기루다.

덕지덕지 붓질을 할 때 나는 마음이라는 공간이 사라져버리는 것 같다.

기분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리고, 내가 칠한 흰색이 더해지는만큼

어쩐지 자유로워진다. 그런것을 행복이라 부르는 것은 과장인 것 같다.

그런 것은 어떤 것으로도 불릴수 없는 텅 빈 것이다.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것을 인생의 목적처럼 떠들어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좋은 마음은

기쁨도 슬픔도 아닌,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과 순간과 순간들이다.


진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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