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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각박한것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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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5회 작성일 26-04-22 05:07

본문

세상이 각박한것만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26년을 함께 산 새어머니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돼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친척들은 하나같이 저한테 연락했습니다.
“빨리 가 봐. 새어머니가 집에 있는 값나가는 거
다 들고 나간 거 아니냐.”

그 말을 듣는데, 저는 그냥 씁쓸하게 웃음만 나왔습니다.
우리 집에 뭐가 그렇게 대단히 값나가는 게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새어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새어머니는 서른여덟에 아버지를 만났고, 그때 아버지는
마흔 다섯 이었습니다.
그분 인생은 참 고단했습니다.
스물 일곱에 남편을 사고로 잃었고, 그 다음 해에는 여섯 살
아들마저 물놀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고, 그 고통을 제대로
이해해 준 사람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른 여덟에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새어머니는 집을 정말 반듯하게 꾸려 갔습니다.
아버지를 살뜰히 챙겼고, 집안도 늘 반짝반짝했습니다.
제가 집에 갈 때마다 상이 휘어지게 밥을 차려 주셨고,
직접 텃밭에서 키운 채소도 바리바리 챙겨 주셨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는 말 그대로 몸을
갈아넣듯이 간호했습니다.
병원에서도 거의 혼자 다 맡다시피 했습니다.
대소변 수발까지 들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라면 그렇게까지는 못 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늘 그분이 고마웠습니다.
우리 집에 해 준 모든 것, 아버지한테 쏟은 그 정성,
그걸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두 분이 26년이나 함께 살았지만, 끝내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니라 그냥 함께 산 사이였던 겁니다.
그 사실이 저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었습니다.

아버지 상태가 나빠지고 병원에 오래 계셨을 때도,
병상 곁은 늘 새어머니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저를 조용히 불러 놓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집하고 예금 4천만 원은 다 너한테 남긴다. 유언장도 써 놨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 나오는데 마음이 참 이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새어머니가 너무 허망하고 안됐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매정한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26년을 같이 살게 해 놓고, 마지막 정리는
그렇게 해 버리다니요.

장례를 치르고 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회사 일도 급했고, 처리해야 할 일도 한꺼번에 몰렸습니다.
새어머니에게도 대충 인사만 드리고 서둘러 올라왔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미 그분이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는 걸요.
아마도 아버지가 자기 앞으로 아무런 대비를 해
두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더 머물 이유가 없다고 느꼈겠지요.

며칠 뒤 친척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새어머니 나갔다더라. 얼른 가 봐. 집에 뭐 없어진 거
없는지 확인해야지.”

저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가져갈 만한 귀중품이 있는
집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고향집으로 내려갔습니다.
집 대문은 잠겨 있었고, 안은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했습니다.
부엌도 깨끗했고, 가스레인지까지 반질반질 윤이 났습니다.
마치 떠나기 전에 마지막까지 자기 자리처럼
정리해 놓고 간 사람 같았습니다.

이웃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에 가방 몇 개만 들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저는 새어머니를 아는 동네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결국
그분의 친정 쪽 오래된 집을 찾아냈습니다.

허름한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제가 들어갔을 때, 새어머니는 마당에 혼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불렀습니다.
“엄마, 왜 여기 와 계세요?”

그 한마디에 새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돌아봤습니다.
그리고는 급하게 말했습니다.
“나, 내 물건만 가져왔어. 혹시 의심되면
직접 와서 봐도 돼.”

그 말을 듣는 순간 코끝이 확 시큰해졌습니다.
그분은 끝까지 제가 자기를 도둑 취급하러
온 줄 알았던 겁니다.
저는 바로 다가가 손을 잡고 통장을 꺼내
그분 손에 쥐여 드렸습니다.

“엄마, 제가 며칠 너무 정신이 없었어요.
이건 아버지가 엄마 드리라고 남긴 노후자금이에요.
집도 엄마 드리기로 하셨어요.
며칠 안에 제가 같이 가서 명의 정리해 드릴게요.”

그분은 그대로 얼어붙었습니다.
눈이 순식간에 붉어졌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하고 법적으로 부부도 아니었는데,
이런 건 받을 수 없어.”

그 말을 듣는데 저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그냥 터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엄마가 엄마 아니면, 제가 앞으로 친정은 어디로 와요?
엄마가 이렇게까지 아버지 옆을 지켰는데,
엄마가 아니면 누가 엄마예요.”

그 말을 듣고 새어머니도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목이 메인 채로 겨우 말했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가시면, 네가 나가라고 할 줄 알았어.
그런데 그 사람이 다 생각해 놨네…
내가 그 사람하고 산 세월, 헛산 게 아니었구나.”

저는 그 자리에서 새어머니를 꼭 안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엄마, 여기 혼자 계셔 봐야 더 적적해요.
저랑 같이 올라가요. 이제 같이 살아요.”

그분은 한참을 울었습니다.
정말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통장은 받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닦고 나서 오히려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고, 일도 할 수 있어.
돈은 네가 가지고 있어.
집은 내가 그냥 지키고 살게.
내가 죽고 나면 그때 네가 가져.
굳이 명의 바꾸고 그런 수고는 하지 말자.
내가 여기 있어야 네 아버지 곁도 지키고,
네가 내려올 때도 아직 집이 있지.”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저한테 했던 그 말은, 저는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한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조심했는지 압니다.
제가 손해 볼까 봐 걱정 하셨겠지요.

그런데 저는 더 분명하게 아는 게 있습니다.
새어머니가 저한테 해 준 건, 단순히 남의 집에 와서
살림한 정도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분은 26년 동안 제 아버지의 곁을 지켰고,
제가 하지 못한 몫까지 다 해 냈습니다.
어쩌면 어떤 친어머니보다 더 깊게 이 집을 지켜 준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분을 끝까지 챙길 겁니다.
그건 의무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그렇게 맺어진 모녀 인연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법적으로 부부였는지, 재산이 누구 앞으로
가는지, 그런 것만 따질지 모릅니다.
하지만 같이 산 세월과, 병든 사람 곁을 지킨 시간과,
말없이 감당한 희생은 서류 한 장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저한테는 그분이 그냥 새어머니가 아닙니다.
아버지가 떠난 뒤에도, 제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집을 지켜 주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누가 뭐래도 그분을 엄마라고 부를 겁니다.

출처 : 작자/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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