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일표 시인을 5월의 초대시인으로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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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초대시인 ❷ ]
사물의 아가미를 열다 — 홍일표의 시적 응시
안녕하세요, 시마을 가족 여러분.
녹음이 짙어가는 5월, 사물과 존재의 이면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그 속에 숨은 ‘노래’를 길어 올리는 홍일표 시인을 이달의 초대 시인으로 모십니다.
홍일표 시인은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매혹의 지도』, 『밀서』, 『나는 노래를 가지러 왔다』, 『중세를 적다』, 『조금 전의 심장』 등 묵직한 시집들을 펴내며 한국 현대시의 미학적 지평을 넓혀왔습니다. 지리산문학상, 올해의좋은시상, 매계문학상, 천상병동심문학상, 시산맥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우리 시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그의 시 세계는, 익숙한 일상의 틈새에서 존재의 낯선 전모를 발견해내는 투명한 통찰로 가득합니다.
홍일표 시인의 시 세계는 익숙한 사물 속에 숨어 있던 낯선 생의 표정을 천천히 불러내는 공간입니다. 그의 시에서 집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며 바람과 햇볕, 사람과 시간이 함께 드나드는 살아 있는 몸이 되고, 깨진 컵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전 생애를 고백합니다.
“최대한 집의 숨통을 열어놓고 숨 쉬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안팎이 들락거리며 한자리에서 놀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 「어느 건축가의 고백」 중
홍일표 시인의 시 속에서 사물은 죽어 있는 물체가 아닙니다. 집은 숭어의 아가미처럼 숨을 쉬고, 깨진 컵은 비로소 제 이름을 지우며 일생의 전모를 고백합니다. 시인은 효율과 편리라는 이름 아래 박제된 사물들의 안쪽으로 들어가, 그들이 오래도록 감추어온 상처와 비명, 그리고 찬란한 고독을 문장으로 불러냅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어느 건축가의 고백」 외 9편의 시편들에는 현대인이 마주한 불안과 허무, 그 속에서도 끝내 놓지 못하는 존재의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9층이라는 높이가 감당하는 쓸쓸함, 원반을 던지며 사라진 방향을 읽는 고독, 셀카봉 끝에서 자아를 복제하는 현대인의 공회전까지—시인은 삶의 균열을 미화하기보다 그 틈을 통해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기꺼이 맞이합니다.
시인은 스스로를 ‘노래를 가지러 온 자’라 칭합니다. 그가 지상에서 수습한 사물의 유골과 깨진 맹세들이 어떻게 시라는 ‘환한 살풍선’으로 부풀어 오르는지, 그 경이로운 과정을 함께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무너지는 것들 속에서도 끝내 노래를 잃지 않으려는 시인의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마음속 오래 닫혀 있던 창문 하나도 조용히 열리게 될 것입니다.
홍일표 시인이 열어놓은 창을 통해, 여러분의 내면에도 기분 좋은 문장의 바람이 깃들기를 소망합니다.
(초대글 / 양현근 시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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