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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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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54회 작성일 17-06-17 13:43

본문





청동물고기 / 허영숙

흔들려야 바람을 읽을 수 있는 산사 추녀 끝
저 청동물고기는
몇 백 년 전쯤 내가 단청장이였을 때 매단 것인지도 모른다
일주문 밖에서 반배를 올리던
목련 봉오리처럼 참한 곡선을 지닌 너를 본 후
가슴에 사모의 별지화를 그려두고
너를 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추녀아래 긴 목 빼고 붓질하는 나를
소리가 날 때마다 올려다보라고 매달았을지도 모를 청동물고기
너는 목련처럼 내게 짧게 피었다 사라지고
붓끝을 따라다니던 내 간절한 기도도 사라지고
달의 옆구리를 돌아 나오는 몇 겁을 지나,
절터 한 귀퉁이 연못의 붉은 잉어로 다시 태어난 내가
몇 백년 전의 숨결을 물고 흔들리는 청동물고기를 올려다보는 밤
달빛에 숨구멍이 모조리 말라
추녀 끝 청동물고기되어 매달린다면
바람으로라도 한 번 쯤 나를 읽어달라고
온 몸 휘저어 물결의 산조로 너를 부르는 그 때
연못가 백목련 꽃잎이 한 잎 두 잎
고름을 풀며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있었다


별지화(別枝畵) : 사찰 단청시 쓰이는 회화적 기법의 장식화





경북 포항 출생
釜山女大 졸
2006년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시집, <바코드 2010> <뭉클한 구름 2016> 等


--------------------------

<감상 & 생각>

저에게 있어, 사찰(寺刹)은 그 어떤 종교적인 장소의 의미보다도
포근한 장소로서의 의미가 더 많은 거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어릴 적에 독실한 불자(佛子)이셨던 외할머니의 손길에
이끌려 절을 많이 찾았던 기억에 연유(緣由)하는 것 같고

특히 기억에 남는 사찰은 집에서 가까왔던 서울 안국동(安國洞)에
자리한 '선학원(禪學院)'이었는데, 늘 고요한 곳이란 느낌이었죠

시를 읽으며, 전생(前生)에 단청장이었을 때 사모(思慕)의 흔적으로 남긴 '청동물고기'를
바라보는 '붉은 잉어'의 고적(孤寂)한 시선 때문인지 몰라도... 그냥, 그렇게
저 역시 어릴 적의 포근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네요

오늘 소개하는 시는 시적 대상(對象)과 화자(話者)의 의식(意識)간에
유려(流麗)한 조화가 일구어 낸, 한 편의 '고요한 아름다움'이라 할까요

시 . 공간의 차원을 뛰어넘어 먼 세월을 딛고 잔잔하게 이어지는,
(영겁[永劫]의 바람결에 실린) 그리움의 깊은 정서(情緖)도
참 좋은 느낌으로 자리합니다

어쩌면 다소, 환상(幻想)적인 분위기도 느껴져서 그 환상 속으로
시인의 모든 감각이 빨려 들어간 듯한 인상도 있지만...

어차피, 시가 서로 차원이 다른 복수(複數)의 시 . 공간을 택하고 있기에
불가피한 시적 구도(構圖)인 것도 같네요


이 詩를 감상하면서, 언어가 한 생명을 획득하기까지 그 언어는
얼마나 오래 동안 시인의 가슴 속에서 아프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새삼 다시 느끼게 됩니다


                                                                             - 희선,





하월가(何月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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