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의 연대기를 읽는 저녁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자유게시판

  • HOME
  • 시마을 광장
  • 자유게시판

(운영자 : 정민기)

 

 자작시, 음악, 영상등은 전문게시판이 따로 있으니 게시판 성격에 맞게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게시물에 대한 법적인 문제가 발생시 책임은 해당게시자에게 있습니다

(저작권 또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게시물로 인한 법적 분쟁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광고, 타인에 대한 비방, 욕설, 특정종교나 정치에 편향된 글은 삼가바랍니다 

게시물은 1인당 하루 두 편으로 제한 합니다


쌀밥의 연대기를 읽는 저녁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andres00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79회 작성일 19-08-21 08:23

본문

 

쌀밥의 연대기를 읽는 저녁 / 허영숙


압력밥솥이 푸- 우 하고 긴 숨을 빼는 순간
집 안 가득한 쌀밥냄새,
허기와 맞닿은 밥 냄새가 한 질의 전집 속에 있는
나를 꺼내 페이지를 넘긴다.

그 무렵, 아버지가 지게 위에 달빛을 한 짐 지고 내려오실 때까지
우리의 저녁은 유예되었다.
담요가 덮인 구들장에서 우리들의 까끌한 보리밥이 보온되고 있을 때,
부엌에서는 아버지의 술밥이 익고 있었다.
너른 채반에 꼬들꼬들하게 식어가던 흰 술밥을
몰래 한 줌 덜어 꼭꼭 씹으면
혀끝에 찰싹 달라붙던 츄잉껌의 기억,
보리밥 대신 하얀 술밥을 품고 익어갈 술독이 되고싶었던 간절한 저녁.

간혹 손끝을 박기도 하던 봉제공장에서 월급을 타는 날이면
초코파이를 사들고 오던 열 여덟의 누이에게도 쌀밥의 기록이있다.
누이가 청춘을 박을 동안 식구가 많은 우리의 밥상에는
보리밥 위에 소복하게 덧 얹어진 하얀 쌀밥으로 인하여 맛보았던
물에 말지 않아도 목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던 머쉬멜로우의 저녁,
지게에 얹힌 달이 뱃속에 만월로 떠있던
포만의 저녁이 그 무렵에 있었다.

식구들의 늦은 귀가를 기다리며
TV에서 내보내는 지루한 유럽축구를 보고있는 늦은 밤,
날마다 술밥보다 더 고소한 뜸이 드는 저녁을 지나와도
밤늦도록 누구의 츄잉껌도, 머쉬맬로우도 되지 못하고 굳어가고 있는 쌀밥,
혼자 입안으로 떠밀어 넣어도
속은 여전히 그 때의 텅 빈 저녁과 같다.
아무래도 빈 것은 뱃속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푸- 우 하고
긴 한 숨으로 빠져나갈 때
창 밖에는 쌀밥처럼 하얀 싸라기눈이 맺음말로 내리고
나는 나를 덮는다.



 



경북 포항 출생
釜山女大 졸
2006년 <시안> 詩부문으로 등단
시마을 작품선집 <섬 속의 산>, <가을이 있는 풍경>
<꽃 피어야 하는 이유>
동인시집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시집, <바코드 2010> <뭉클한 구름 2016> 等



-------------------------------------

<감상 & 생각>

'쌀'은 우리에게 있어 단순한 음식의 의미보다는
삶의 전망을 도출(導出)하게끔 하는, 끈적한 질료이기도 하다

요즘에야, 쌀이란 건 흔해져서... 예전에 그 배고팠던 시절의 의미는
이제 찾아 보기 힘들지만 그래도 가난했던 우리들의 아픈 기억들이
현실에서 중첩(重疊)될 때마다 스스로 무거워지는 의미이기도 하고

츄잉껌의 달콤함과 머쉬멜로우의 부드러움을 간직했던 쌀밥...

과거의 굶주림과 헐벗음의 아픈 기억들이 과거로 물러가더라도,
쌀밥이 지녔던 만월(滿月) 같은 포만에의 기억은 우리의 가슴 속에
늘 아련한 추억으로 머물러 있겠다

다소, 긴 호흡의 시이지만... 현재의 빈 가슴 같은
무덤덤한 일상의 삶 속에서 충만한 가슴으로의 복귀를 바라는
시인의 조용한 의지가 참 고와 보인다


                                                                                                   - 熙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669건 1 페이지
자유게시판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운영위원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 03-20
8668 비교급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 04-27
8667 Cubic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 04-19
8666 35P삼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 04-03
8665 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 03-29
8664 장 진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 03-28
8663 오상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 03-14
8662 청머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 02-24
8661 관악이낳은비운의시인현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 02-21
8660 신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 02-14
8659 마콜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4 02-14
8658
취미생활 댓글+ 2
제시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6 02-12
8657 테오시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 02-12
8656 제시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2 02-10
8655 제시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5 02-10
8654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 02-09
8653 김용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4 01-04
8652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9 12-29
8651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 12-28
8650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 12-27
8649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 12-26
8648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 12-25
8647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 12-24
8646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9 12-23
8645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 12-23
8644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 12-21
8643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8 12-20
8642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7 12-19
8641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 12-18
8640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8 12-17
8639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3 12-16
8638 장 진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2 12-20
8637 마파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 12-17
8636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 12-15
8635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 12-14
8634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 12-13
8633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4 12-12
8632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 12-11
8631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 12-10
8630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 12-09
8629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 12-08
8628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 12-06
8627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 12-07
8626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9 12-05
8625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 12-04
8624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 12-03
8623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6 12-02
8622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6 12-01
8621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 11-30
8620 남궁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9 11-29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