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颱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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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98회 작성일 23-05-04 13:11

본문

태풍 / 배기가스


저것은 바람이 아니다 살아있는 것들의 손아귀다

꿈을 떠나 방황하던 발자국들의 아우성이다

성난 바퀴처럼 콧김 내뿜으며 그동안 이마 짓누르던

먹장구름 걷어내는 일이다

눈 안에 눈동자를 감추고 운명에 부딪혀 보려는 미친 몸부림이다


저 손아귀, 아무리 움켜쥐어도 산산이 부셔져 흩어지는 침묵뿐

꿈에서 만난 불안한 욕망의 비늘만 쏟아낸다

지느러미를 갖지 못한 고래처럼

제 몸 긁혀 앞으로 나아간다

삶은 건널 수 없는 바다

그 바다를 건너다

홀연히 세상 떠나신 아버지처럼


살아있는 나의 꿈이란 이마를 덮은 먹장구름 한 장 걷어내는 일


오늘 아침 아내는 붉은 볼펜 움켜쥐고 태풍 속에서 나팔꽃 피웠다

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뿌리까지 뽑혀 날아가는 꽃밭에서 피는 꽃이란 슬픈 것이다

악착같이 움켜쥐고도 언제나 빈손으로 사라진 태풍처럼

활짝 벌어진 나팔꽃잎, 피아노 학원 한 번 가보지 못한 딸아이가

그 꽃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건반을 두드린다

후두둑 후두둑 창밖에서 투정하는 음률


미안해, 정말 미안해

----------------------------

<감상 & 생각>


해마다 여름이면 태풍이 한반도를 할퀴고 지나간다 

그 태풍에 사람들은 가슴 조마한 날밤을 걱정으로 지새고..


그 탓일까

오래 전에 읽었던 이 시가 생각났다


<저것은 바람이 아니다>로 시작해서,

<살아있는 나의 꿈이란 먹장구름 한 장 걷어내는 일>로

詩 읽기에 마침표를 찍었다

예사롭지 않은, 시울림이어서 남겨지는 여운이 깊다 (마치 에밀레 鐘소리처럼)

세상이 휘두르는 폭력에 대항하는 상징으로 <태풍>을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고,

동원되는 환유(換喩)도 과장됨이 없이 적절한 느낌


한편, 세상의 틀을 벗어난 데서 다시 벗어나는 또 다른 아픔도 읽히고......


저항있는 의식(意識)이 시적 대상(對象)에 침투하면서,

삶이 담지한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 나온다

결구(結句)에 <미안해, 정말 미안해>는

숙연(肅然)한 시인 자신의 의식(意識)과 눈물어린 만남이어서,

코 끝이 찡해 온다


새삼스레, 詩를 쓴다는 것은

<머리로 언어를 추려내는 인위적 작업보다는

가슴의 언어를 받아적는 민첩한 활동> 이란 걸 느끼게 된다

오래전에 시마을에 들려

문득 생각난듯 시를 툭, 던지고 했던

이 시인이 누군지는 지금도 알 길이 없으나

詩가 지나치게 잘 짜여있단 느낌과 함께

포착되는 비평안(批評眼) 또한 잘 드러나 있어,

시어를 많이 다루어 보신 분이란 생각이다


좋은 詩라는 소감 하나, 떨군다

                                                           - 희선,

Quiet Storms - Elegy


댓글목록

정민기09님의 댓글

profile_image 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삶은 건널 수 없는 바다
​그 바다를 건너다
홀연히 세상 떠나신 아버지"

얼굴 모르는
'아버지'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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