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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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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1회 작성일 20-11-1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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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어두움 몇 조각을 치우면 너는 보였다

여러 가지 얼굴로 쉽게 바뀌던 소년
골목이 부려먹던 아이 눈이 그치듯 너는 그치고 갔으나
극장은 지금껏 영화를 보여주고 관객은 자리에 앉아 있다

외투처럼 꽉 껴입은 서울생활 지퍼로 단단히 잠근 기억 저편엔
바둑알 같은 글자들이 안개 낀 다리를 서성이고
너는 외톨이로 늙어버린 아이
그러므로 기적은 네 곁에 머물 수 없었다

신문기사 같은 너의 시는 너를 생활인이라 불렀고
잠시 검은 구름을 걷어내면 너의 창문은 밝게 빛나기도 했다
그러나 아주 잠깐만이었으니, 그토록 두꺼웠던 너의 기억,

너는 죽은 자들을 읽었으나 너를 읽은 평론가는 네 길을 찾느라 밤을 지샜다
길은, 절망이며 동시에 희망이었고 너의 휴식과 사랑은 짧았다
그러나 숲과 하늘과 강과 길은 제 자리를 떠난 적이 없다

네 빈 집을 찾은 사람은 차가운 바람이 부딪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았으리라

어느날 갑자기 내 안으로 툭 들어온 너의 시,
너의 시는 너만의 외톨진 마지막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갑자기 들어온 너의 시를 음미하자마자 빠져나올 탈출구를 찾았다
그토록 너는 아름다웠으나 또 절벽처럼 위험해 보였으므로,

문득 찬바람을 몇 꺼풀 벗기면 아이처럼 골목을 오가는 네가 보였다

[이 게시물은 창작시운영자님에 의해 2020-11-19 18:32:26 창작시의 향기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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