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 마네킹 =김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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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 마네킹
=김근희
얼굴 없는 마네킹 급처분! 입고 있는 옷까지 몽땅! 택배는 사절. 흠집은 옷으로 가릴 수 있다는 점 염두에 두시압.
광고보다 절박한 진열장
할로겐 불빛이 터져나갈 듯 팽팽하다
17인치 허리를 버티는 다리 한 짝이 들려 있다
막다른 무대가 기우뚱,
시선의 입구에 선 마른 목젖이 얼굴을 지워 나간다
기억의 창을 흔들면
사람의 눈길이 먼저 다가와
블랑쉬의 웃음과 TV 스타의 이목구비
비슷한 윤곽 하나 찍어 손가락을 돌리는 은유의 공간
썬텐 짙은 자동차의 은밀한 눈
비공개 결혼식을 쫓는 카메라의 눈 성장에 얹힌
토르소의 눈
익명의 눈알눈알들 구르다 대롱대롱 꺼져가는
벗은 얼굴들이 지나간다
비틀거리고, 또 누구는 움직이지 않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운다
트랜드에 얹혀가는 계절은 누군가의 욕망을 좇아
목까지 채운 금빛 단추가 질식하다
움찔,
무엇이든 끌어드릴 수 있다고
당신도 당신의 허기도
당신이 깨어져, 더욱 빛나는 거울 조각도
서로를 부둥켜안아도, 적절한 다음 표정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네킹이 옷을 갈아입는다. 뒤처진 유행은 벗어 던지고
기호에 맞는 기호가 된다
무성영화를 보았다 뭉클한 어제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시인들》 2026 봄•여름호
김근희 서울 출생. 2013년 《발견》 등단. 시집 『외투』『새벽은 종이보다 가볍다』.
흰 가운을 걸치고=鵲巢感想文
눈은 항상 낯섦에 익숙해야 한다. 전체가 잘 보이지 않아도 부분은 어디로 향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끔 시는 그 명암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시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각 절은 이정표를 남기니까, 시제가 ‘마네킹’이다. 마피아도 아니고 마네킹이었다. 가끔은 웃음이 날 때도 있다. 과연 시인들은 제정신인가? 언어의 연금술사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오는 택배에 그 흠집은 역시 목젖과 골목의 메움에 있겠다. 무성영화를 보듯 마음을 팔아 치울 수 있는 능력은 분명 어제語帝다. 그럴 능력도 없고 그럴 자신감도 없는 광고는 오늘도 무대에 서서 기우뚱 얼굴만 지우고 기억만 채울 뿐 할로겐 불빛 따라 절뚝거리는 다리만 펼쳐 보인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는 말이 있다. 따뜻한 봄날에 온갖 생물(生物)이 나서 자라 흐드러짐을 이른다. 본다는 것은 블랑쉬의 웃음과 같다. 비록 TV(티비) 스타의 이목구비이지만 비슷한 윤곽 하나쯤은 생길 수 있으니까. 그런 은유의 공간은 무엇일까? 뜨거운 태양 빛 아래 파라솔 펴놓고 야한 티팬티 같은 그런 결혼은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이지만 어지간한 눈은 오지 않으므로 저 가슴팍에다가 얼굴을 묻고 우는 일, 그래 맞아 그게 우선이고 어찌 보면 어제에 가까운 질식이며 서로 부둥켜안는 표정이 아닐까! 그러다 보면 17인치 허리가 18인치 다리로 가는 길, 그게 바로 사리명창辭理明暢으로 가깝게 가는 길이겠다. 칠과 팔과 십칠과 십팔은 분명 다르다. 하나가 분본粉本이면 다른 하나는 본분本分이다. 허기에서 원만으로 가는 길, 당신에서 당신을 끌어 내리는 일은 무성영화만큼 신혼을 즐기는 일 그건 분명 마네킹처럼 어제에 이른 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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