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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호, 아름다운 사람의 길 / 양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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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회 작성일 26-05-1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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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호, 아름다운 사람의 길 / 양문규



  지난밤 천둥 번개를 동반한 억수 장대비 때문에 한잠도 이루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하였습니다. 하늘은 어쩌자고 산천초목과 마을과 길을 지우며 비를 쏟아붓는 것인지요. 며칠 째 내린 장맛비는 이미 남부 지방을 비롯한 강원 영동 지방을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습니다. 여기라고 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요. 산방 앞 날망집 언덕이 날아가고 그 자리에 있던 아름드리 소나무가 뿌리째 뽑혀 흉물스럽게 나뒹글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다랑이논들의 벼가 돌과 자갈과 모래로 생매장 되었으며, 산사태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끊겼습니다.


  천둥 번개가 있는 날이면 산방은 어둠 천지로 변합니다. 어젯밤도 그러하였지요. 낙뢰의 피해를 막기 위해 전원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거실에 전등 대신 대초 세 개로 환히 불을 밝히고 책을 읽다가 그것도 시들하여 술을 마셨습니다. 홀로 마시는 술은 여는 술자리에서 마시는 같은 양의 술임에도 불구하고 더 취하게 하나 봅니다. 비속에 홀로 술 마시는 게 참 서글픈 일이지만서도요. 영국사 뒷방 신세를 질 때 청승떨며 마시던 술이 그립기도 했던 밤이었습니다.


  영국사 뒷방지기로 있을 때 윤중호 형이 찾아왔었어요. 서울생활 이후 형과 가끔 전화를 주고받긴 하였지만 서울이 하도 징글맞아 매번 서울 올라갈 때마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냥 내려오곤 하였지요. 낙향 이후 전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으며, 같은 학교에서 문창과 학부 수업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요. 형은 학교 가는 날을 어찌 알았는지 서울 올라갈 때마다 전화통에 대고 “수업 끝나면 한번 들려야 쓰지 않거나” 하였지만 “영동에서 봐요”하며 그냥 내려오기 일쑤였답니다.


  그날도 비가 앞을 분간할 수 없이 억수로 내렸었는데요. 배낭에는 소주가 들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우리는 저녁 공양도 거른 채 물 마시듯 술을 마셨답니다. 나누는 이야기야 뻔했지만 ‘디런 세상 확 뒤엎을 수 있는 힘도 없고 하니, 우리 못난 놈들끼리라도 서로 나누고 의지해 잘 살아보자’는 거였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가 서울에서 내려오길 잘 했다는 거였지요. 왈패 같은 서울 있어봤자 왈패가 될 뿐 또 무엇이 되겠냐며 절 위로하는 애쓰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이야기 속에는 자조 섞인 비틀림이 있었지만 그 속에는 웃음이 잘잘 넘쳐났지요. 그와 함께 하는 자리는 언제나 그랬어요. 사람 무시하고 저 혼자 잘 살겠다고 날뛰는 놈들 질겅질겅 안주 삼아 못난 놈들 눈물 닦아주는 말품이 꽤나 유창하였거든요. 그 이후 우리는 서너 차례 더 만나게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그가 췌장암으로 이 세상을 떠나기 전 투병 생활을 하고 있던 옥천에서 였습니다. 그게 마지막 그와의 인연이 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돌아갈 곳을 알고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세요
     모두 돌아갈 곳으로 돌아간다는 걸
     왜 모르겠어요.
     잠깐만요. 마지막 저
     당재고개를 넘어가는 할머니
     무덤가는 길만 한번 더 보고요.

     이 · 제 · 됐 ·습니· 다.
                  ―윤중호, 미완유고시「가을」 전문



  이 시는 윤중호 형의 유고시집 『고향 길』(문학과지성사, 2005) 제4부 끝장에 만년필 잉크가 마르지 않은 채 육필 원고 그대로 게재된 시입니다. 형은 투병 생활 중에 이미 “돌아갈 곳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는 고향으로 상징되는 할머니가 묻혀 있는 당재 고개 너머 “무덤 가는 길”만이라도 “한번 더 보고”자 하였을 것이고요. 그러나 저승사자는 그를 고향 아닌 저승으로 인도하고 말았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애타는 비원이 안타까움을 더할 뿐입니다. “이 · 제 · 됐 ·습니 · 다.”로 생을 마감하는 그를 생각할 때마다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왜 하필 가난하고 외롭고, 착하게 사는 사람만 먼저 데려 가는지요. 그런 까닭에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불거집니다. 아니 그의 유고시집을 펼칠 때마다 늘 그러하지요. 그와 함께 고향에서 의지하며 벗하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었는데 말입니다. 이제 그는 고향 언저리 어디에도 없고 다만 유고시집만이 고향을 대신하고 있답니다.


  그의 장례식 날― 그가 여름휴가 때 가족과 함께 즐겨 찾았던 영동 송호에서― ‘제1회 아시아 시낭송 및 문학 강연’이 있었지요. 전 그때 행사 진행 관계로 마지막 가는 길을 같이 하지 못하고, 그해 고형렬 시인이 발간하는 『시평』가을호에 윤중호 형을 기리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조사로 대신하였습니다. 그 글에서 전 “오는 2005년 9월 그의 작고 일주기가 되는 해 ‘문학과지성사’에서 유고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고, 2009년 5주기에 맞춰 “그의 모든 글들을 모아 ‘윤중호 문학 전집’을 발간할 계획”도 밝혔습니다. 그리고 “고향 언저리에 시비도 건립할 것”을 제안했었는데, “이 모든 작업은 바로 살아 있는 우리들의 몫”라며 글을 맺었지요.


  2005년 유고시집 『고향 길』 출판 기념회 및 추모 문학제가 영동 여성회관에서 있었습니다. 유족을 비롯한 평소 그를 아끼던 친구 및 문단 선후배가 함께 한 자리로, 윤중호 시와 삶에 대해 문학평론가 정과리, 김종철 선생의 강연이 있었고요. 2006년 영동문화원에서 문학평론가 임우기 형이 「엄니의 시―중호야 녹두꽃이 폈어야」문학 강연과 추모 문학제가 조출하게 치러졌습니다. 2006∼2007년 영동 송호 수련원에서 ‘시에―자연과 국악이 어우러지는 문예 한마당’ 행사의 일환으로 윤중호 추모 문학제를 열었는데, 많은 문인들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루어야 할 문학 전집과 시비 건립은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공염불이 된 거지요. 며칠 전 이대건(윤중호 형 후배)으로부터 시전집 발행과 시비 건립 문제로 공주에서 몇몇 지인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접했을 뿐입니다. 5주기가 코앞에 닥쳐 있는데도 우린 윤중호 형을 위해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으니 이를 어찌 해야 할까요. 그가 어릴 때 뛰어놀며 삶의 양식이 되었던 “산딸기가 무리져 익어가는 곳”과 “찔레 새순을 먹던 산길과/삘기가 지천에 깔린 들길과/장마 진 뒤에, 아침 햇살처럼, 은피라미떼가 거슬러 오르던 물길” 옆에 시비를 세우고 문학전집을 헌정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릴 때는 차라리, 집도 절도 피붙이도 없는 처량한 신세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뜬 구름처럼 아무 걸림 없이 떠돌다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한때는 칼날 같은 세상의 경계에 서고 싶은 적이 있었다. 자유라는 말, 정의라는 말, 노동이라는 말, 그리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 그 날 위에 서서 스스로 채찍질하며 고개 숙여 몸을 던져도 좋다고 생각했다.//한때는 귀신이 펑펑 울 그런 해원의 詩를 쓰고 싶었다. 천년의 세월에도 닳지 않을, 언듯 주는 눈길에도 수만 번의 인연을 떠올려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는 그런 詩.//이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이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은 너무 멀고 그리운 사람들 하나 둘 비탈에 묻힌 이 나이가 되어서야, 돌아갈 길이 보인다.//대천 뱃길 끊긴 영목에서 보면, 서해 바다 통째로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아무것도 이룬 바 없으나, 흔적 없어 아름다운 사람의 길,/어두워질수록 더욱 또렷해.


                                                  ―윤중호, 「영목에서」전문



  유고시집 『고향 길』에 수록된 이 시는 「詩」, 「고향 길 1」「고향 길 2」, 「회인 가는 길」 등과 더불어 시적 형상화가 잘 이루어진 후기 대표작 가운데 한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는 윤중호 시인의 삶의 여정과 심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데요. 시인이 지향하는 시세계가 “아름다운 사람의 길”에 있었음을 짐작케 합니다.


  윤중호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 안면도 소재 누동학원(야학의 성격을 띤 일종의 재건 학교)에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정규 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생활 하였습니다. 교사라고 하지만 월급도 없었고 숙식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곤궁하여 몹시 어려웠던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이들과 동료 교사와 학교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헌신적으로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목’은 이때 그가 안면도에 살면서 몸으로 체득하게 된 시적 모티브가 된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6연으로 이루어진 「영목에서」의 주제는 한마디로 ‘아름다운 사람의 길’을 궁구하는데 있습니다. 그의 생활철학이며 시적 주제이기도한 ‘아름다운 사람의 길’은 사람과 마을을 살리고 나아가 자연과 하나 되는 공동체 정신입니다. 그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염원했던 것 자체가 여기에 있는 것이겠지요. 1연의 떠돌이의 삶의 동경, 2연의 정의를 위해 몸을 던지는 행위, 3연의 귀신을 펑펑 울릴 혜원의 시 등은 자신을 받쳐 보잘것없는 하찮은 이웃과 함께 “서로의 묵은 업장을 눈물로 녹이”고자 하는 시인의 고뇌입니다. 그리고 4연 돌아갈 길, 5연 그리운 노을, 6연 아름다운 사람의 길 등에서는 삶의 본분이면서도 시의 본령으로 서로를 향한 그리움입니다. 그러나 지게 작대기 장단이 그리운 나이가 되어서도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시인의 심정이 어떠하여 겠는지요. “하늘을 보듬고 서서 토해내는 그리운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시인은 비록 이룬 것 이 죽어가면서도 ‘아름다운 사람의 길”을 끝까지 견지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사유가 필요치 않는 시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지요. 윤중호 시인은 가장 낮은 곳에서 사유하며 “가난한 사랑노래, 그리운 사람들의 정다운 숨결”을 함께 듣고 만지고 나누며 한데 어우러져 살아갈 고향을 그리워하였던 사유하는 시인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저승에서나 그런 세상을 가꾸어 나가고 있지 않을까요.
  오는 9월 12일 영동 송호에서 그를 기리는 5주기 문학제를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열고자 합니다. 그와 평소 가까웠던 문인들을 초청해 윤중호의 삶과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말입니다. 비록 문학 전집은 발간하지 못 하였고, 시비를 세우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사람의 길’ 이 무엇인지 그의 시를 통해 배울 것입니다.
  윤중호 형은 멀리 갔어도 그의 시는 남아 우리의 가슴을 촉촉이 적십니다. 그래서 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가 봅니다.


계간 시에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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