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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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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계보몽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9회 작성일 25-10-09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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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소고 




에전에 한가위는 찌든 삶의 말미에 찾아오는 잔치 같은 것이었다. 아이들은 추석빔으로 새옷을 얻어 입기도 하고 찢어진 검정 고무신을 하얀 고무신으로 바꿔 신는 날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추석장을 보시고 바리바리 이고지며 들고 오신 보따리에는 검정 고무신 하얀 고무신, 꽃무늬 원피스에다 참기름 병 대구포가 뒤섞여 마당에는 만물상이 되고 아이들은 제 것을 찾느라 초롱한 검은 눈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새로 사온 고무신을 신고 팔작팔작 뛰어보기도 하고 조금은 큰 꽃무늬 원피스도 마당을 휘휘 날아 다녔다. 그야말로 한가위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잔치 같은 것이었고 잔치였다.


어른들은 햇벼를 일찌감치 베어 말려 한가위 상에 올릴 송편의 찰기를 위해 떡방앗간에 맡기고 감이나 대추등 햇곡식을 준비하는라 대목이 바빴다. 앞밭에 있는 햇고구마도 실한 놈을 골라 전을 부치려 솥뚜껑에 올라가고 밭둑에 있는 무성한 모시잎을 따서 햅쌀의 하얀 가루무침을 기다렸다. 어머니를 도와 두레반에 앉아 송편을 조물락거리던 맏이의 모습 옆에는 아버지가 열심히 햇밤을 치고 있었고 할머니는 모시저고리의 옷고름을 고치느라 연신 바늘에 침을 묻히고 계셨다. 그러고서 아버지는 밤을 쳐서 하얀 사기그릇에 담궈 놓고 허물어진 사랑채 마루에 엎드려 벼루를 꺼내 먹을 가셨고 내일 고유제에 올릴 선조의 지방을 섬섬히 그리셨다.


한가위가 지나고 다음날 대처에서 크게 사업을 하는 고우가 찾아 왔다. 얼굴이 번들거려 갑장인 나보다는 10년이나 젊어 보이는 고우의 얼굴을 보며 친구야 장가 한 번 더 가도 되겄네! 하니 얼굴에 웃음꽃이 피며 좋아라 헤벌쭉해진다. 한가위라 가족 모두가 강원도 양양과 속초를 돌며 연휴를 즐기다 추석성묘도 할 겸 고향을 찾아온 것이었다. 요즈음은 차례도 제수를 여행지에 가지고 가서 현장중계로 지낸다는 말도 있고 해서 차례는 지내고? 하고 내가 물으니 아직도 그런 거 지내는 사람이 있나? 하고 멀쩡한 얼굴로 반문을 했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다음 말이 기억이 나지 않고 머리가 하얗게 되더니 이게 뭐지? 하는 찰라의 생각이 천길만길로 회오리치는 데 요행이 제 정신이 돌아와 그래 그거 참 잘 했네!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 생각도 없는 희떠운 말이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안방에 있는 며느리가 마침 소반에 식혜와 배쪼가리를 들고 인사를 들어오는 바람에 얘기가 다행이도 싹뚝 잘라졌다. 그러면서도 혹시 며느리가 둘의 얘기를 들었다면 내 입장에서는 큰 낭패가 아닐 수 없는 일이라 저으기 걱정이 되어 친구의 눈치를 살핀다. 며느리가 문을 닫고 나가자 신기한 눈빛으로 차례를 안 지내고 성묘만 하고 그 걸로 끝인가? 하니 당연한 표정으로 우린 그렇게 지낸지 오래 되었어! 한다. 야 ! 이 꼰대야! 하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다 얼얼하다.


한가위의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분주한 시어미와 내 사랑스러운 며느리가 마루에서 분주하다. 시어미는 서울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 넣으려고 아들과의 논쟁이 한창이고 며느리는 시부모가 힘들까봐 청소기를 돌리고 이불을 털고 난리법석이다. 저 사랑스러운 두 여인을 위헤 두둑한 한가위 보너스라도 준비해야지하며 사랑의 봉투를 서랍에서 꺼낸다. 우리도 내년부터는 신세계를 살아볼까? 하며 고개 든 처마에는 선조님의 당호가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사랑채 마루에 앉아 출옥을 앞둔 죄수처럼 앞날이 캄캄해서 주인은 석고처럼 굳은 얼굴로 먹구름이 낀 한가위 하늘을 본다. 오리무중의 세월, 가랑비가 궂은비 되어 추적추적 내린다. 올 추석은 흐린 마음처럼 5일째 비요일이다. 조금씩 한가위가 잦아드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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