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용돌이 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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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뭔가 휘끄므르한 것을 본 것 같았다. 등산로 옆 나무가지가 쌓여 있는 곳에 사람 물체같은 허연 것이 보였다. 남자는 조심스럽게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도달해서 보니 사람 몸통의 일부가 나뭇가지 사이에 빼꼼히 드러나 있었다.
“아앗!”
남자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쳤다.
강팀장은 토막난 시체 곁으로 다가가 섰다. 팔다리와 머리통이 없는 사체였다. 누가 유기한 것이었다. 이런 류의 살인사건이 벌써 5번째였다. 혹시 여성의 머리카락을 피부채로 벗겨간 동일범의 소행인지 하는 생각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막내형사가 나뭇가지를 치웠다.
강형사는 흠칫 놀랐다. 예견한대로 가슴이 드러나고 간 부위가 찢어져 그 부위를 절제한 흔적이 드러났다.
“강팀장님, 그 놈 같은데요. 수법이”
“씨팔, 우리를 유린한 것도 아니고, 벌써 몇 번째야”
강팀장은 투덜댔다.
잠시후에 감식반이 도착하고 육안으로 검안이 시작되었다.
사후경직이 턱관절과 목관절에만 일어나면 사망한 지 4시간이 정도 지났고 사후경직이 손 발 어깨 관절에 나타나면 7시간 정도 지난 것이다. 그리고 사후경직이 온몸에 나타나면 10시간 정도 지난 것이다.
“가슴을 보니 사망한 지 하루 이틀이 지난 것 같아. 약간의 부패 티가 보이거든.”
최영철 감식반장이 말했다.
“나이는 추정이 가능한가요?”
“모르지, 몸통만 가지곤. 하지만 내 소견으로는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여.”
강팀장은 한숨을 휘 하고 내쉬었다.
확실한 신원이 밝혀져야 알겠지만 범인이 여성 머리카락을 피부채 벗겨 가거나 간을 적출하는 걸로 보아 주변의 누군가가 암환자거나 그에 버금가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었다. 여태껏 수사 결과가 그러하기도 했다.
아직 속단하긴 어럽지만 이 여자 토막살인사건도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고 있는 ‘용가리 백정’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의 것일 공상이 크다.
감식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노란 띠 폴리스 라인이 처졌다. 강형사는 오리무중이자 단서 하나 남기지 않고 있는 범인에게 외쳤다.
“반드시 널 잡고 말 거야! 꼭꼭 잘 숨어. 그러지 않으면 넌 내 손에 죽을 거야!”
그 여자는 죽은 것도 갖고 생명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녀는 푹신한 의자에 앉자 무릎에 펼쳐진 신문을 내려본 것처럼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주방에서는 그녀의 남편이 달그락거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나의 팅커벨! 나의 팅커벨! 식사 준비가 다 끝나가!”
남자는 노래를 흥얼거리듯 말했다. 밤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자가 얼굴을 돌리자 뿔대안경에 두툼한 입술이 드러났다. 잘 생긴 얼굴이었다.
잠시후 남자는 나무 식탁에 노란 음식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척 봐도 삼사인분은 되어 보였다. 인도식 카레였다.
“오늘 메인 요리는 카레야. 당신이 아프기 전에 즐겨 먹었던?”
“고마워요. 나 좀 그리로 데려가 줄래요?”
여자의 희미한 음성이었다.
“그래요.....배가 고픈 모양이네.”
남자는 음식을 식탁에 다 차리고 나서 종종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남자가 손을 내밀어 쭉 식탁쪽을 향해 그었다. 그리고 나선 여자를 휠체어에 태워 식사 장소로 걸어갔다.
남자는 그녀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앞치마를 착용시켰다.
“나의 팅커벨! 언제가 당신이 다 나으면 스스로 식사할 수 있을 거야.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래?
”저도 소망이에요. 그렇게 빨리 되기를.“
남자는 여자의 푸른 입술을 손으로 움직였다. 그러니까, 여자는 말을 못했다. 대부분은 그가 여자의 목소리를 내어 같이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왜냐면 그녀는 죽은, 즉 포르말린 인간이었다.
여자는 결혼직 후 쓰려졌었다. 병원으로 이송해 검사를 받았는데 말기 간경화로 병명이 나왔다. 유일한 완치법은 약물도 아니고 식이요법도 아닌 간이식밖에 없었다.
남자는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간이식을 해 줄 뇌사자를 알게 되었고 천운으로 이식해도 된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 이식할 날짜를 잡게 되었다. 어렵게 이식에 성공했고 여자는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밥도 많이 먹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해 이식 수술 6일만에 중환자실로 옮기게 되었고, 갑자기 위급한 순간이 찾아와 심폐소생을 하면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진단이 나왔었다.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그녀를 지켜보며 남자는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녀는 너무나 쉽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남자는 이유도 없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개심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여자를 보낼 수가 없던 그는 인터넷을 뒤져 여자를 곁에 두고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결과 엠바밍이라는 방부 시신 처리방법을 알게 되었다. 남자는 밤낮없이 공부에 파묻힌 결과 몸속 피를 제거하고 방부제인 포르말린을 투입해 여자를 보존해 내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는 심장은 뛰진 않지만 젊은 모습 그대로 남자 곁에 있게 되었다.
여자는 먹는 시늉을 받으며 말없이 남편이 식사하는 것을 지켜 보았다.
“여보, 우리 다른 세상에서 만나요. 그만 날 보내 주고요......”
남자는 잘 설치된 음향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선 ‘백지영의 대쉬’라는 가요가 들려왔다. 여자는 아까처럼 소파에 앉아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목뼈 때문에 고개를 처들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너를 사랑한 후 내가 달라진 건
외롭던 나의 시간이 채워 준 너의 생각들
불처럼 타오른 열정은 아니지만
깨지지 않는 사랑의 믿음이 생겨난 거야.
이젠 내가 너보다 먼저 다가갈 거야
널 사랑한다는 그 말을 내가 먼저 하고 말 거야
남자는 스트릿댄스라는 즉흥적이면서도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춤을 쳤다. 붉은 색 조명이 켜진 거실의 중앙에서 남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광경이었다.
“여보, 힘 내. 다 나으면 나와 멋진 춤을 함께 출 거야. 많이 기대돼.”
“저도요. 난 당신이 나를 바라보며 몸을 흔들 때 가장 신나고 행복했어요.”
“그렇구나. 나도 사실 그랬었는데...... 벌써 육개월이 지나고 있어. 난 이렇게 있고 나의 팅커벨은 거기에 앉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친 게. 하지만 실망은 안돼. 내가 열심히 놈들을 물리치고 있거든. 그 혁명이 끝나면 당신은 나와 멋진 춤을 출 거야.”
일순간 남자의 표정이 섬뜩해 졌다.
남자는 그렇게 반 시간을 춤을 쳤다. 그런 후 여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꽤 큰 거실을 지나 큰방으로 했다. 큰 방인 침실은 은은한 취침 조명이 휜색의 더블 침대를 비췄다.
“여보, 나 샤워하고 올게.
남자는 침대 안쪽에 여자를 눕히고 살그머니 이불을 목까지 덮어 주었다.
남자는 정성스레 몸을 씻은 후 여자를 씻기기 위해 세수대야와 물수건을 가지고 침대로 돌아왔다.
여자가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제치고 그녀의 하얀색으로 통일된 블라우스와 주름 치마를 벗겨냈다. 여자의 몸은 하얗고 아름다웠다. 그는 따뜻한 물수건을 건져 짰다. 그리고 탁 펼쳐서 사각형으로 접은 후 그녀의 얼굴부터 씻겼다. 짙은 눈썹과 오똑한 콧날, 도톰하고 섹시한 입술을 차례대로 닦았다. 가느다란 목선과 봉긋한 가슴, 평평하고 매끄러운 배, 그 아래로 삼각형의 수풀, 쭉 뻗은 두 다리, 정말 매혹적이었다.
여자를 깨끗이 씻긴 후, 목욕 뒷처리를 했다.
”나의 팅커벨, 당신 안으로 들어가도 돼?
그의 부드럽게 속삭인 목소리에 여자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여자의 다리를 살그머니 벌린 후, 그의 무언가가 여자의 다리 사이로 깁숙히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체성애증의 원인은 사회적 거절감,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나 불안, 우울 등으로 반응이 없고 저항이나 거절할 수 없는 대상인 시체를 선호한다. 깊은 애착이나 유대감, 사랑을 느꼈던 대상이 떠나간 후 잊지 못하거나 떠나 보내지 못하는 데서 시체에 대한 집착, 애정이라는 시각이 있다. 남자는 아마도 후자 같았다.
잠시 후 남자가 몸을 떨었다. 그러자 여자가 그를 더욱 깊게 안은 듯 느꼈다.
“나의 공룡님. 오늘 정말 좋았어요.”
여자의 밝고 나른한 목소리를 들으며 남자는 천천히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둘에게 정말 만족스러운 정사였을까. 어두운 창문 너머로 밥이 더욱 깊어가고 있었다.
'용가리 백정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합동수사본부는 종로경찰서에 차려져 있었다.
강준혁 형사는 강력팀 팀장으로 살인사건의 중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즉 현장에서 지휘하는 형사들 중 최고였다. 그의 앞으로 아이스박스 하나가 도착했다. 수상한 그것은 ‘발신:용가리’라고 적힌 아이스박스였다.
“여기에 뭐가 들어 있을 것 같아?”
강팀장이 모두를 둘러보며 물었다.
“예감이 안 좋은데요. 팀장님?”
홍일점인 조선아 형사가 말했다. 그녀는 6개월 차 새내기 형사였다. 그녀는 현장에서 남자들처럼 수사하고 싶어 강력팀에 지원했다.
“제가 뽑아 올게요!”
첫출근한 날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고 있던 강팀장에게 말했었다. 그는 잘 생기고 눈썹이 얕아 사납게 보였다. 미리 인터넷으로 강팀장을 검색해 그에 관해 좀 알아냈다. 그는 뛰어난 추리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굵직한 살인사건 서너 건을 알아낸 스타 팀장이었다.
“처음 보는데?”
강팀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의 위아래를 훑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늘 종로경찰서 강력팀으로 발령을 받은 조선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잘 해 보자고!”
그는 동전을 높이 던젔다 받아 내기를 반복하며 선아의 내민 손이 무색하게 그녀의 곁을 차갑게 스쳐갔다. 이게 그와의 첫만남이었다.
“혹시 사람 얼굴은 아니겠죠?”
막내형사 정영훈이 말했다.
“과연 사람 머리통일까....자, 모두들 놀라지 말아. 뭐가 나오든.”
강팀장이 표면을 덮고 있는 아이스팩을 치우며 말했다. 그 밑에 신문지로 꽁꽁 쌓인 무언가가 있었다.
“물컹하는 걸 보아 느낌이 좀 쎄하네.”
강팀장이 숨을 깊게 쉬며 말했다. 긴장되는 모양이었다.
“어어, 이거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네, 간이야, 사람 간!!”
모든 형사들은 순간 흠짓 놀라 뒤로 물러섰다.
“팀장님, 이거 오늘 발견된 그 사람의 간이 아닐까요?
”그럴 공산이 커.....자세히 보니 간의 일부가 절단됐네....뭐에 쓰려고 절단됐다고 생각해, 모두들 각자 의견을 내봐?“
”글세 떼어내다가 실수한 게 아닐까요?“
정영훈 형사가 말했다.
”제 생각은 성취감이나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시식한 게 아닐까요. 여기가 어딘데, 겁도 없이 간을 퀵으로 보내요. 대담한 용기와 자신감에 범인은 가득 차 있을 것 같아요,“
선아가 말했다.
”그리고 수사해 보면 알겠지만, 범인은 우리 공권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거예요. 여태까지 잠잠하더니 갑자기 이번 사건만 절취한 간을 보낸 것은 우리를 조롱하고 희롱한 거라고 생각됩니다. “
선아가 계속말했다.
“덧붙여 피해자들의 머리를 피부채 벗겨 가고 없잖아요. 이건 머리카락이 없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거예요.....간과 머리카락,,,,,이거 혹시 간암환자의 소행이거나 그것에 밀접한 자의 소행이 아닐까요.”
잠잠히 듣고 있던 강팀장이 무거운 입을 벌리며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야. 우리나라 간암환자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데이터를 뽑아 수사해야겠어. 그리고 이 간은 국과수에 보내 dna와 혈액형 알아 봐”
“예, 팀장님.”
막내형사가 대답했다.
“팀장님, 전화가 온 것 같은데요?”
“그래.....여보세요?”
강팀장에게 걸려 온 전화 내용은 이랬다. 몸통이 발견된 지점으로부터 반경 2킬로미터를 수색해 결국 나머지 사체들을 찾아냈다.
희생자의 지문만 밝혀내면 수사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예전처럼 지문을 도려내고 불로 지져 버렸다. 그럼 희생자를 알아내는 데 훨씬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으로 망가진 지문이어도 그 소유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은 탄 부위를 긁어내고 그 아래에 숨어 있는 진피 지문을 뜨는 것이었다.
성명: 이지은
나이:28세
직업: 회사원
진피로 찾아낸 지문으로 희생자의 신상이 밝혀졌다. 그녀는 무역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실종된 지 3일만에 주검의 시신으로 가족 품에 돌아가게 되었다. 그녀의 취미는 배드민턴이었고 한때 간암을 앓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동안 희생자가 4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이 간과 관련된 질병을 가졌으리라곤 생각 못했다. 그래서 희생자들 유족들한테 급히 알아 본 결과 희생자 모두 간암 치료를 받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로서 이번 살인사건의 공통점이 나왔는데, 그것은 희생자 모두 간암을 치료 받았다는 것이었다.
형사들 모두 자책과 다짐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자, 모두들 다음 희생자를 찾아 봐. 다음 희생자 역시 간암을 앓았을 것이고 지금은 극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을 거야. 아까 지시한 간암환자나 간암 치료자 모두 조사하라고.”
강팀장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찼다. 꽉 막힌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간암협회 사무실은 강남에 있었다.
사전에 약속을 잡고 왔기 때문에 오회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70줄의 회장은 까무잡잡한 피부에 까만 뿔대 안경을 쓰고 있었다. 회장은 차분하고 배려심이 좋은 남자였다. 그가 두 형사에게 차를 권하고 준비하고 있던 서류를 펼쳤다.
“다섯 명 모두 ‘용가리 백정’ 살인사건의 희생자라는 것을 회장님은 언제 아셨어요?”
조선아 형사가 물었다,
“ 오늘 그 사진을 보고 알았어요. 나하고 친분이 깊은 아가씨여서 금방 알아 볼 수 있었어요. 이지은 환자는 ‘블루스카이’ 회원이죠. 블루스카이는 간암완치 환자들이 모인 동호회였는데, 이지은 환자가 총무였어요. 나하고 빈번한 접촉이 있었어요”
살인사건 이틀째인 오늘 아침 대언론 브리핑이 있었다. 수장인 강팀장이 맡았다. 거기서 다섯 번째 환자 이름과 얼굴이 공개됐다. 오회장도 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고, 그녀가 불루스카이 회원이라는 것을 알고 회원사진을 검색한 결과 다섯명 모두 간암 환자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곤 즉각 경찰서에 신고한 것이었다. 그 신고를 받고 조선아형사와 강팀장이 급히 간암협회로 달려온 것이었다.
“다섯명에게 뭐 특별한 점은 없었나요?”
강팀장이 물었다.
“모두 간암 완치 환자이고 블루스카이 회원이라는 거 외엔 이상한 점은 없었어요.”
“서류를 챙겨났다고 했는데, 그겁니까?”
선아는 오회장이 건네 준 서류을 받았다.
5명의 희생자들의 신상과 특이한 점들이 적혀 있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할 말이 생기면 이리로 전화주세요.”
강팀장이 명함을 주었다. 오회장이 그것을 들여다보는 표정이 좀 이상했다.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강팀장과 선아는 감사 표시로 목례를 건네고 그곳을 걸어 나왔다,
우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차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주차장은 어딘지 모르게 답답했다. 차의 문을 열고 들어가 운전석에 앉은 선아는 강팀장과 서류를 나눠 검토하기 시작했다.
우혜림: 나이 28세....키 167센티미터....발병 이전에 배구선수였다.
정다영: 나이 30세...키 170센티미터....발병 이전에 골프선수였다.
박현지: 나이 27세.,..키 173센티미터....발병 이전에 체조선수였다.
서인혜: 나이 29세....키 169센티미터....발병 이전에 육상선수였다.
이지은: 나이 29세....키 168센티미터....발병이전에 배드먼트선수였다.
선아는 문득 희생자들의 사체 유린 장소가 떠올랐다, 1번은 불암산, 2번은 수락산, 3번은 사패산, 4번은 도봉산, 5번은 북한산이었다. 등산객들은 그 다섯 산을 종주하는 게 로망인데, 그 다섯 개의 산은 등산 코스였고 산의 첫글자를 따서 불수사도북이라고 불렀다. 그 코스는 45킬로미터인데 탁 트인 전망이 멋지고 정상에 넓은 바위가 있어 쉬기도 좋았다. 그런데 왜 그 산들이며 산의 첫글자를 딴 순서인가.
“ 팀장님, 불수사도북이라고 들어 봤어요?”
“응. 그런데?”
“글자 순서대로 사체를 유기했어요. 뭘 의미할까요?”
“바로 그거! 불수사도복! 글자 순서대로 버리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뭐 생각나는 거라도 있어?”
“난 왜 뜬금없이 올림픽이 떠오르까요.”
강팀장이 고개를 쳐들고 쳐다보았다.
“오륜기요? 올림픽기 말이에요.....”
“올림픽은 치열한 경쟁을 벌리 거 아니야?
”그렇죠. 그러니까 희생자들이 희생되기 전이나 후에 뭔가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버리지 않았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그럼 그것에 대해 한 번 궁리를 해 봐?
“예, 팀장님.”
선아는 의지를 머금은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 연쇄살인 사건에 지속성이 있는데, 그거 알아, 조형사?”
“아, 주기요. 2주정도 간격을 두고 살인을 저지른 것 같아요. 즉 범인이 냉각기를 가진다는 거죠. 연쇄살인범은 스스로 피해자를 선택하고 범행 장소와 과정을 계획 후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에만 살인을 저지르잖아요. 즉 자신이 이성적으로 판단을 할 수 있는 심리적 냉각기를 보이는 것을 특징으로 하여 지속적으로 살인을 반복하죠. 살인이 반복될수록 범인은 더 큰 심리적 쾌락을 얻고자 잔인해지며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며 최고의 쾌락을 느끼고요.”
강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훌륭해,”
선아는 처음으로 강팀장에게 칭찬을 받자 뿌듯해졌다.
그는 냉혹한 면이 있었다, 가끔은 그 냉혹함이 사람에게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상대가 어깨를 으쓱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 그가 새롭게 보이게 하는 면도 있었다. 그래서 선아는 그를 남몰레 흠모하고 있었다. 남자다움, 그리고 부드러움. 그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두 사람은 서류 검토를 마치고 그곳을 떠나기 위해 차의 사동을 걸었다.
그녀는 벽면에 공을 힘껏 쳤다. 그녀가 쥐고 있는 라켓이 길고 매끈하게 빠져 있었다. 탱글탱글한 작은 공이 그녀를 향해 날라왔다. 그녀는 그 공을 다시 한 번 힘껐 쳤다.
배은지는 몇 년 전만 해도 농구 코트를 누비는 프로 선수였고 국가대표이기도 했다. 갑자기 간암이 발견되어 농구계를 떠났지만 아쉬움은 상당했다.
은지는 한참을 더 스쿼시를 즐긴 후 자리에서 떠났다. 그녀가 스쿼시를 하는 이유는 항암치료를 받느라 허약해진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결국 떠나왔던 농구계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그녀를 운동에 몰입하게 했다. 샤워장은 좀 붐볐다. 샌터로 운동을 하러 온 여성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운동은 무엇보다도 잡념을 없애 주는 데 제격이었다. 그리고 건강해 지는 장점도 있었다. 그녀는 벗은 몸에 시원한 물줄기로 땀과 더위를 식혔다.
그녀는 머리카락에 정성을 드려 삼푸와 린스를 발라 머리를 감았다. 그녀는 윤기나는 머리를 위해서 올바른 샴푸 후 빗질, 담백질 및 비타민이 풍부한 헤어팩, 두피와 헤어 오일 사용, 그리고 드라이 시 큐티클 방향으로 말리기 등을 맞췄다. 그리고 타월로 머리를 젖은 상태로 너무 오래 감싸두지 않고 수분을 최대한 제거한 뒤 드라이 했다.
배은지가 머리카락에 이렇게 신경을 쓴 이유는 암 때문에 머리카락이 전부 빠져 그 머리카락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트레이닝복을 걸쳤다. 센터는 집에서 반시간 거리에 있어 그리 멀지 않은 편이라 단촐한 복장으로 운동하러 온 것이었다. 배은지가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홀을 가로질러 갔다, 밤 9시였다. 그녀는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그녀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갔다. 지하1층을 누르고 편안해진 마음을 느꼈다.
그녀의 차는 구석진 곳에 있었다. 한참을 걸어 차에 올라타러던 순간이었다. 차문을 열려던 순간, 무언가 물컹한 것이 입에 느껴졌다. 달콤한 맛이 났다. 세보프루란이라는 전신마취제였다. 그녀이 몸이 푹 꺾어 지려던 순간 누군가 허리를 잡았다. 그녀가 느낀 것은 그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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