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개벽(天地開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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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개벽(天地開闢)
종택인 현양재의 중창비문을 검토하고 이것을 결정하기 위해 임시종회가 열렸다. 며칠 전 백세를 5년 정도 남긴 그야말로 망백의 최씨종택인 충의당의 종손과 지역 향교의 전교를 맡고 있는 월성인도 만나 비문의 개략적인 내용을 놓고 의견 개진이 있었고 해서 오늘은 우리 종인들을 만나 최종 결심을 하는 그런 임시회의가 고천 선영 가는 길에 있는 재사에서 열렸다.
원근에서 온 종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서로 반가운 손을 잡으며 지난한 삶의 안부를 묻는다. 참석하는 종인들이 주로 고령이고 이따금 만나면 큰 수술을 해서 기울어진 몸으로 곧 선조님의 곁으로 갈 종인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래도 꾸역꾸역 모여들어 머리를 맞대고 문사를 걱정하는 걸 보면 먹먹한 마음에 감개무량이 절로 쏟아진다. 오늘은 유독 젊은층이라 할 수 있는 60대가 대 여섯명이 오시는 바람에 회의 분위기가 훨씬 젊어졌다. 이곳에 사는 이들의 정서를 보면 눈물겹게도 선대의 정서와 지혜를 따르는 이들이 가뭄에 콩 나듯이 있다. 그런 의식있는 몇몇 종친들이 근근히 500년 문사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주인으로서는 감복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무려 20여분이나 오셨다.
비문을 전체적으로 검토를 마치고 전체 의견을 묻자 젊은층에서 생각지도 못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일순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한자가 너무 많고 길어서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누가 2500자나 되는 비문을 보고 있겠느냐가 이들의 의견이었다. 나름 몇 달을 자료를 모아 완성한 작자의 뒷통수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듯 정신이 얼얼하고 심지어 이걸 1000자 정도 줄여 보자는 엄명인데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엄연한 선조의 이력과 역사적 사실을 밀가루 반죽을 하듯이 마음대로 주물럭 거려도 되는 것인지 느닷 없는 정서의 격차에 할 말을 잃었다. 노년층은 할말을 상실하고 멀뚱멀뚱 주인의 눈치만 보고 있고 젊은 종인들의 눈초리는 당장이라도 자기들의 의견 관철을 위해 시선을 곧추 세운다. 이런 걸 보고 진퇴양난이라 그랬던가. 싸늘한 공기가 가라 앉을 즈음에 주인이 한 마디 한다. 선조의 역사를 축약을 해버리고 한자마져 빼버리면 그 의미가 불분명한 부분도 있으니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하고 최후 통첩을 던져 버렸다. 그랬더니 울산에서 온 젊은 종인 하나가 쳇 피티라는 에이아이가 있는데 거기 넣으면 내용은 설득력 있게 살리고 간결한 문장이 되어 새롭게 탄생을 하니 그런 거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당돌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게 무슨 소린교! 하니 젊은 종인들은 다 안다는 듯이 노종인들을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 기가차서 그러면 그 축약 된 비문을 보내 주시오! 하니 유명 가수의 노래처럼 10분내로 보여 주겠다고 한다.
정장을 하고도 넥타이를 안 맨 듯한 문장을 들고 요상하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해서 바뀐 세상의 물정에 쉬이 스며들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는 납득이 갈만한 결론이 나온 것 같기도 해서 바로 거 참! 신통하네라는 말은 체면상 할 수 없어 허공을 바라보며 좀 검토해 봅시다 하고 짐짓 꼬리를 내리고 임시총회를 마쳤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유행가도 있지만 모든 것이 에이아이라는 마술에 걸려 그것을 만사형통으로 인간들이 매달리는 것을 보면 이제 인간정서의 세상은 막을 내리는구나 하며 긴 한숨의 꼬리가 끝이 없다. 그래도 오래 살아 이 신비로운 세기를 살아가고 있으니 바닷가에 발 담그듯이 조금씩은 스며들어 이해하며 살아가는 인생이 되고 싶기도 하다. 보완한 비문을 들고 다음 임시총회에 어떤 표정으로 나서서 설명을 해야 될 지 시대의 끝자락에서 갈 길 몰라하는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이제 그들의 세상이 오고 그들의 정서대로 문사의 흐름을 맡겨야지 하면서도 선대가 걸어 가신 아득한 이정표 앞에서 한 쪽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자신이 초라해져 남루한 옷깃을 여미는 새벽이다.
댓글목록
안박사님의 댓글
#.*계보몽* "種親會長"님 !!!
"天地開闢"이라눈 말씀에,奇異한 生覺을 하였는데`如..
"種親會議"를 主管하시며,느끼신 바를 眞率하게 表現하신..
本人도 種親會長을 10餘年했눈데,요즘 젊은 種親會員들은 零..
"계보몽"任 처럼,激世之感을 느낍니다! "계보몽"任!늘,健安하세要!^*^
계보몽님의 댓글
안박사님 안녕하시죠?
그렇습니다. 저도 대처에서 사업을 하다 귀향한 터라 많은 정보를 갖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 번 일련의 사태를 보고 다시 한 번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서서히 낡은 정서를 내려 놓고 젊은 종친들의 정서를 존중하지 않으면 않 되는
답답한 세월이 시작 되었습니다 ㅎ
격려의 말씀 고맙습니다 안박사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