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히야신스 / 임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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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속의 히야신스
임혜신
바닷가 꽃집에서 보랏빛 히야신스를 샀다
허리가 잘룩한 유리병
가늘고 흰 발가락들이 아래쪽 둥근 물 속으로 유영해드는
포구의 빛은 밝고 비릿하다
다섯장의 푸른 잎새
꽃송이 두어 개 막 피어나는
저 작고 고요한 식물의 언어를 들여다보는
관증(觀症)의 햇살
한 겹 두 겹 베일을 벗어던지는 꽃은
찾아오지 않는 모든 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던
한 노인의 망각을 닮았다
사막, 자동차, 별, 자갈, 숲, 그리고 마지막엔 바다였었지
그때 그 포구로 데려다 달라던 그,
매혹도
욕망도 순수도 잃어버린 쓸쓸함
그리고도 남은 것 있어 떠흐르던 이름들
판도라의 상자를 연기처럼 꾹꾹 눌러덮으며
너무 짧고 너무 아픈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불렀던가
창밖으로 한여름 매미들이 울고 있다
내 헐벗은 노래를 들려줄테니 당신의 따스한 노래를 들려주오, 땅속은 어둡고 외로웠다오
내 헐벗은 노래를 들려줄테니 당신의 달콤한 노래를 들려주오, 영원히 그대에게 빠져 죽을 수 있도록,
유혹하는 허무의 저항
그래, 잊을 수만 있었다면
욕망은 저 숲속처럼 깊고 달콤했었지
다만 사랑했던 것만이 슬픔이었던 가슴속
적막조차 정착하기를 거부하는 8월의 열기
그 무엇으로 태어난다는 미지에
보라빛 적요가 들떠오르고
-우리가 부른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답니다
한 노인이 후회 없이 버리고 간 이름들이 속삭인다
소란스레 눈을 뜨는 안개
밤길, 등대, 칼, 성곽, 불꽃, 언덕, 전쟁, 종말,헛간, 새,아프리카
그리고 당신의 포구,
― 《웹진 시산맥》 2025년 가을호 신작시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학교 국어과 졸업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공대 졸업
1995년 《워싱톤 문학》, 1997년 <미주 한국일보>로 등단
시집 『환각의 숲』『베라, 나는 아직도 울지 않네』
미국시 해설서 『임혜신이 읽어주는 오늘의 미국시』
공저 영시집 『Korean-American Poetry Anthology』
2009년 미주시인상, 2010년 해외문학상, 2021년 해외동주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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