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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시인의 대표작품(自選詩)을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작은 존재들이 건네는 투명한 위로 ㅡ 성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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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13회 작성일 26-03-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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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초대시인 


작은 존재들이 건네는 투명한 위로 ㅡ 성영희의 시 세계

 

 

  이번 달에 모신 초대시인은 시마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성영희 시인입니다.

  성영희 시인의 시를 읽는 것은 낮게 엎드린 풀꽃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며, 그 작은 숨결이 어떻게 우주의 은하수와 연결되는지를 목격하는 따뜻한 경험입니다. 시인은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단단한 문장에 담아 거대한 생명의 서사로 확장해 냅니다.

 

  그의 시적 호흡은 한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해 계절과 사물, 생명과 우주로 뻗어 나갑니다. 작은 풀꽃 하나에서 은하수까지, 일상의 옹이와 여울에서 별의 기원까지 이어지는 시선은 고요하지만 깊고 단단합니다.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주로 활동해 온 그녀는 농어촌 문학상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활동을 시작하였고경인일보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이후  인천문학상김우종 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문학 나눔 도서 선정과 인천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를 통해 작품성을 공인받았습니다특히 서울과 인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다수의 시가 선정되며시민들의 일상 공간 속에 시의 향기를 심어 온 생활시인이기도 합니다.

 

  성영희 시의 가장 두드러진 미덕은 은유의 투명성에 있습니다. 은어들에서는 병상에 누운 여인의 마지막 시간을 여울의 물살로 겹쳐 놓고, 릴레이에서는 작은 풀꽃 하나를 계절의 바통으로 확장합니다. 생의 고단함을 말할 때조차 격정 대신 절제를 택하며, 존재의 가장 약한 지점을 통해 생의 거대한 순환을 보여줍니다.

 

  또한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여름 짐승 몰아내기에서는 내면의 불안과 욕망을 동물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면서도, 그것을 밀어내는 대신 다독이며 공존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의 시 세계에는 늘 팽팽한 긴장이 서려 있지만, 그 긴장은 파괴가 아닌 깊은 성찰로 귀결됩니다.

 

  사소한 사물에서 관계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힘도 인상적입니다. 몬스테라에서 상처를 창으로 바꾸는 이미지처럼, 성영희의 시는 결핍을 확장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근작 은하수를 기다리며에서는 지리산 칠불사의 어둠 속에서 우주적 사유로 나아갑니다.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호출하며 인간의 사랑과 상실을 별의 시간에 포개 놓지만, 시인의 시선은 결코 거창하지 않습니다. “발자국 소리도 함부로 내지 마라는 마지막 당부처럼, 존재 앞에서 한없이 조심스럽습니다.

 

  성영희 시인의 시집인 , 생을 물질하다, 귀로 산다, 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이라는 제목들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감각적인 언어로 세상을 탐문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시는 화려한 목소리로 외치지 않습니다. 대신 물결처럼, 풀꽃처럼, 별빛처럼 우리에게 스며듭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묻습니다. 지금 당신의 계절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별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이번 초대시를 통해 우리는 작은 존재들이 이어가는 거대한 릴레이를 다시금 만나게 됩니다. 성영희 시인은 그 이어달리기의 조용한 주자입니다.

 

 시마을 가족 여러분,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성영희 시인의 자선 시 10편과 함께 따뜻한 계절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초대글 / 양현근 시마을 대표)

 

================

 

어들 9

 

      성영희

 

 

가을 햇살이 마당이며 지붕 위를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휴일

침대에 누워 눈만 깜박이는 여자를 보러

쌍둥이 아들이 왔다.

엄마가 곧 별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모르는 채

물고기처럼 헤엄쳐 다니는 어린것들

저 바짝 마른 몸 어디에

깊고 깊은 물의 근거지가 있었을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어도

은구슬 같은 아이들 웃음소리에

하염없이 반응하는,

여울이다.

흘러내리는 물이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착시를 주는 여울

늘 그 자리에 머무는 것 같았던 여울

간간이 몸 허물어지는 소리만

물살인 듯 흘러간다.

 

싱싱한 은어의 몸에서는 수박 향이 난다는데

치어를 떠난 은어들이

수박 향 가득한 성어가 될 때까지

맑은 강으로 흐르고 싶었을 여자

두 뺨에 흐르다 마른 눈물 자국이

은하처럼 아득한데

뒤척, 물이 돌아눕는다.

 

 

 

릴레이

 

 

건물 화단에 버려진

플라스틱 컵을 화분 삼아

작은 풀꽃 하나 피었다.

아무리 작아도 여름을 실천 중이시다.

비스듬히 누워 반쯤 흙에 묻힌

컵 속엔 빗방울에 묻어온 먼지가 쌓이고

이끼가 번성시킨 습기가 척박하지만

자잘한 하트 모양의 잎들이

초록 불을 놓고 있다.

 

아무리 여름이 넓고 무덥다 해도

초록 없는 여름이 있을까.

또 초록을 딛지 않고 꽃 필 수 있을까.

씨앗 맺는 꽃 없이 내년의 여름이

번성할 수 있을까.

 

트랙에 줄 맞춰 서 있는 선수들처럼

바통 이어받을 준비가 끝난 선수들처럼

식물들, 이어달리기를 한다.

그렇다고 순위를 매기거나

환호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다.

 

민들레가 메꽃에, 메꽃이 쑥부쟁이에, 쑥부쟁이가 여치에, 여치가 쓰쓰쓰 난 전파 심한 가을 숲에 전하는 바통들.

 

서로 얼굴 모르지만

계절의 대표 식물들은 이어져 있다.

 

 

 

휴일

 

 

성체를 모시기 위해 줄 서서

사제 앞으로 다가서는데

옆줄 노부부

구부정한 할아버지 뒤에

더 굽은 할머니가,

뒤로 뻗은 할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꼭 잡고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그 어떤 힘에도 놓치지 않을 것 같은

바람만 불어도 끊어져 버릴 것 같은

 

해로(偕老).

 

그 내력이야 꾹 다문 입속에서

녹아가는 밀떡 아니겠는가.

성체 모시듯

서로의 이름 속에서

세 들어 산 옛말 아니겠는가.

 


 

 려질 순서

 

 

이사를 앞두고

하나씩 버리기로 한다.

앞으로 들어왔던 것들이

뒷걸음질로 나간다.

이 집에 살면서 가장 불화했던 것이

모서리들이었고

화해한 것도 모서리들이었다.

오래된 것들은 그 모서리부터 낡고 닳는다.

화해는 서로 닳는 일이었다.

 

몇 번의 유행이 바뀌는 동안

옷가지들은 날씬했던 과거에 머물러 있다.

 

버릴 것들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

무슨 죄를 짓는 것만 같아

손대지 못한 채 며칠이 흘렀다.

무거운 것들이 놓였던 자리마다

꾹 참고 또 참았다는 듯

짓눌린 자국들은 이 집에 남을 것이다.

이런저런 자국들은 쉽게 따라나서지 못할 것이다.

 

쌓아둔 책이 허물어지고

가지런했던 것들은 헝클어지면서

제 쓸모를 버린다.

미끄러진 책들 사이로

섞이고 가려진 이름이름들

몸 없는무수한 이름들과 동거했었다.

 

고요했던 구석들이

먼지로 살찌고 있었다.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모든 구멍은 머리이고 꼬리입니다

그 꼬리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다시 꼬리만 까딱거리는 뱀

스스로 감은 불협을 풀면

냉기가 사라질까요

제 몸을 제가 품고 있는 형상은 축축합니다

똬리를 틀면 헐거워진 구멍에선 금세

포만에 찬 소리가 쉭쉭 새어 나오죠

돌돌 말린 궁리는 가장 완벽한 방어 자세로

멀리 도망치고 싶다는 뜻일까요

구멍이 탁하고 닫히는 때가 있어요

똑똑 두드리면

스르륵 사라지는 꼬리로 대답하는 뱀

제 뒷모습을 뚝 잘라버리죠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똬리를 풀고 구멍을 빠져나가면

내가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올 풀린 스타킹과

탁 닫히는 꼬리뿐이죠

검은 입구는

어떤 다정한 말도 다 뚝뚝 끊어 먹어요

 

나는 들길에 나부끼는 뱀의 허물

세상의 모든 구멍이란 철이 없어서

그 속을 들여다보는 일은

허물을 뒤집어써도 좋다는 각오입니다

 

뱀이 돌아올 시간입니다

오늘의 혀는 얼마나 더 갈라져 있을까요

구멍을 열 면 벗어 놓고 간 허물들이

스멀스멀 머리를 치켜들어요

매듭지을 수도 없는 긴 몸을 끌고 다니는 뱀은

사라지는 꼬리가 더 무섭습니다

 


 

  

왕리에서 나를 만나다

 

 

먼저 온 파도가

나중 온 파도를 그러안고

잔물결로 스러지는 해변

 

부서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파도 없듯

물결이 만든 물결을

물결이 지우고 있다.

 

하늘과 바다가 하나 되는 순간

 

수평선 너머 낙조가

한낮의 바람과 파도 소리를

고요하게 품고 있다.

 


  

 

여름 짐승 몰아내기

 

 

  개 한 마리가 들어와 있다묶인 줄이 이리저리 돌 때마다 어질어질한 말뚝흔들리는 두개골에 수건 한 장 얹어 놓고 불을 지핀다.

 

  펄펄 끓는 머리가 담긴 혀즐겁던 말들이 헐고 있다바람만 스쳐도 짖어대는 개처럼 미세한 거미줄이 악착같이 엉켜있다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컹컹 집 한 채를 깨우고 나면 어느 순간 다시 조여 오는 끈끈한 목줄.

 

  한여름 짐승에게 나는 호락호락한 먹잇감이다잠깐의 냉기가 불러온 방심누군가 나를 조정 한다꼬리뼈가 근질거린다날카로운 송곳니와 짧은 다리들이 생겨나고 검은 털이 돋는다.

 

  꼬리를 흔들던 반가움은 실종 중이다.

 

  짐승의 털은 겨울에나 따뜻한 것한여름에는 거북한 바깥일 뿐이다꺼칠꺼칠한 털들이 꼬리를 칠 때마다 간질거리는 목멀리 듣는 개의 청력처럼 귓속이 웅웅거리는 것도 여름 짐승의 털 하나가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몰아낸다는 것은

  불러내거나 윽박지르지 말고 살살 다독여서 잠재울 일,

  그다음 슬그머니 나만 빠져나올 일.

 

  그리고 겨울용 털로

  여름을 견딜 것.

 

 

 

 

가금류들

 

 

  종합중기 마당 후미진 곳에는 닭과 청계와 기러기들을 사육하는 가금류 우리가 있다일찍 아내를 잃은 종합중기 사장병아리 한 마리 반려한 것이 지금의 농장이 되었다는데 일찍 일 마친 인부들이 모이는 저녁이나 비 오는 날이면 우리 앞 평상은 그들의 휴식처다.

 

  오늘은 공사 하나 마무리한 사장이 미꾸라지 특별식을 제공한 것인데

 

  기러기가 금실이 좋다는 말은

  옛말 아니면 헛말,

 

  미꾸라지 한 마리를 놓고 암수 기러기들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암컷이 물고 도망치는 미꾸라지를 잽싸게 낚아채 꿀꺽해 버리는 수컷지켜보던 중기 사장과 인부들 저것들도 사람 사는 세상과 다를 것 없다고 쯧쯧 혀를 차는데

 

  계절에 살면 철새이고

  지붕이 있는 우리에 갇히면 가금(家禽)이 된다지만

  입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늘 남편 앞으로 밀쳐 놓던 죽은 아내가 더욱 생각나는 것이었는데

 

  금실(琴瑟)이라,

  바짝 조이면 그 음이 멀리 가고

  끊어지면 독수(獨守).


 

 

 

몬스테라

 

 

제 몸에 창을 내야

더 넓어지는 가족이 있지

햇살도 어쩌지 못한 어둠을

상처로 밀어내는 초록 거인

갈라지고 쓰러지더라도

아주 놓치지는 말자고

아스라이 부여잡은 손가락들

 

햇살을 들이고 바람을 부르는 일로

갈비뼈 몇 개쯤 내어줘도

아픈 줄 모르는 지독한 이름들이 있지


  

 

 

하수를 기다리며

 

 

별을 보려거든 지리산으로 가라

달빛 교교히 흐르는 밤 말고

칠흑 깊은 어느 밤

칠불사 영지 뒤에 몰래 숨어서

견우별 직녀별을 거느리고

고요히 떠오르는 북두칠성을 맞이하라

 

그 국자에 별똥별 하나 떨어진다면

수억 광년 전

첫사랑을 놓친 여자가 흘린 눈물

 

돌아보면 세상에 별 아닌 것은 없어서

별 같은 사랑 하나 가슴에 품고

별처럼 깜박이다 사라진다면

그리움이란 또 얼마나 아름다운 우주인가,

 

눈도 감고 핸드폰도 끄고

은하수를 기다리던 그 밤

꿈인 듯 사라진 반딧불이는

*창백한 푸른 점 하나가

칠불사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증거

지리산 칠불사에 가려거든 부디,

발자국소리도 함부로 내지 마라

간밤 길을 잃고 떨어진 별 하나가

안개 자욱한 풀숲 어디에서

단잠을 자는 중인지도 모르니

 

*칼 세이건보이저1호가 61억 km에서 찍은 지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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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영희 시인 약력]


충남 태안 출생

경인일보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인천문학상김우종 문학상농어촌 문학상동서문학상

아르코 문학 나눔 도서 선정

인천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서울지하철 스크린 도어인천지하철 스크린 도어 공모 시 다수 선정

시집 생을 물질하다』 『귀로 산다』 『물의 끝에 매달린 시간』 

 

 

 


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임기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성영희 시인님
이달의 시인에서 만나 뵈니 더욱 반갑습니다
시 봄동 나물처럼 맛나게 읽겠습니다
감사하고 또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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