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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 삶에서 길어 올린 깊은 울림 — 김진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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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8회 작성일 26-04-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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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초대시인 ]


비린 삶에서 길어 올린 깊은 울림김진수 시인 

 

  4월의 두번 째 초대시인은 시마을에서 오랫동안 깊은 울림을 전해 온 김진수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주문진항의 비릿한 바다 내음 속에서 모성의 온기를 길어 올리고, 무심한 사물에 깃든 생명의 떨림을 포착해냅니다. 일상의 고단함을 단단한 서정으로 감싸 안아, 결국 하나의 큰 생의 이야기로 확장합니다.

 

  시인의 시선은 삶의 현장에서 출발해 사찰의 문살과 범종, 더 나아가 피안의 세계까지 닿습니다. 홍게의 붉은 몸에서 어머니의 생을 읽어내고, 꽃살의 적막에서 새 생명의 기운을 길어 올리는 시선은 고요하면서도 또렷합니다.

 

  강원도 주문진 출생으로 시마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왔으며, 2014년 시마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2016시와세계로 등단한 그는 시집 설핏, 꿈 아닌 꿈, 응축된 슬픔이 달다,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와 동시집 달을 세 개나 먹었다등을 통해 폭넓은 시 세계를 펼쳐왔습니다. 2023년 백교문학상 수상은 이러한 성취를 보여줍니다.

 

  김진수 시의 중심에는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습니다. 홍게는 살아서도 붉고 죽어서도 붉다에서 삶의 고단함은 자식을 위한 사랑으로 전환되고, 고통은 끝내 한결같은 붉음으로 남습니다. 범종꽃살의 숨결에서는 사물 속에 시간과 생명의 흔적을 불어넣으며, 세계를 바라보는 사유의 깊이를 더합니다.

 

  또한 매듭에서는 단절 대신 풀림과 이해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관계의 본질을 부드럽게 드러냅니다. 최근작 어머니의 강에서는 긴 생을 건너온 존재의 평온을 담담히 그려내며, 삶과 죽음을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입니다.

 

  김진수 시인의 언어는 화려한 수사보다는 깊이 스며드는 쪽을 택합니다. 비린 갯내처럼, 은은한 종소리처럼, 조용히 우리 안에 머물며 묻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기꺼이 뜨거워질 수 있는가를.

 

  이번 초대시를 통해 우리는 삶의 매듭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김진수 시인은 그 매듭을 가장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지는 시인입니다.

   시마을 가족 여러분, 4월의 빛 속에서 김진수 시인의 시와 함께 삶의 온기가 더욱 깊어지길 바랍니다.


 (초대글 / 양현근 시마을 대표)

 

=======================

 

범종9

 

    김진수


 

저보다 더 큰 입이 어디에 있으랴! 하늘로 향하면 욕심이 커질까 당초문 치맛단 아래 없는 듯 숨기고 세계를 품는다.


저물녘, 새벽에 풀어 놓았던 것을 불러들여 다시 품는다. 밤새 품은 세계가 소리가 되는


한밤중, 귀 기울이면 생황, 수공후* 소리 들리는 듯 들리지 않아 요사채 문고리는 몇 번이고 달그락거렸다.

 

새벽녘, 밤새 품어 숙성시킨 세계를 풀어 놓는다. 퍼져나가

 

하늘이 하늘 되고,

바람이 바람 되고,

새가 새 되어 날갯짓하는

하루.

 

귓전에 맴도는 소리 한 움큼 잡아 맛을 본다.

밤새 문밖이 자그락거리더니 저 종도 나와 같이 잠을 설쳤는지 덜 익어 떫다.


새벽을 밟아 달마산** 넘어가야 하는 걸음은 헉헉거리고

큰 입 아래 묻혀있는

작은 항아리 속에는 소리가 되지 못한 마음만 그득하다. 

 

* 범종 몸체에 새겨진 비천상이 연주하는 악기

** 전남 해남군에 있는 산. 미황사가 있음

 

  


 

게는 살아서도 붉고 죽어서도 붉다

 

  

홍게는 철없든 부끄러움이며 아린 눈물이다.

 

주문진항 어물전 가판대에 쌓인 홍게에서 애써 눈을 돌린다.

 

서서히 되살아나는, 홍게 가득 머리에 인 강릉댁 걸음이 거침이 없다.


저 걸음 어찌 반백을 넘었다 할까!

 

배 아파 낳은 여섯 중 위로 넷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책은 다섯째에게 머물렀다.

 

하나라도 대학 공부시켜보겠다는 일념은 밤낮이 없었고 채소 장사, 생선 장사 마다하지 않았다.


몸에 밴 비린내는 매 학기 등록금이 되었다.


발꿈치 굳은살로 공부한 다섯째.

그 억척이 부끄러워 따뜻한 말 한마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홍게는 살아서도 붉고 죽어서도 붉다.

 

여자인데 어찌 부끄러움이 없었으리.

엄마이기에 잠시 접어두었을 뿐,

어미의 부끄러움은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라 하셨다.

 

나는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거 다 했는가?


손금이 닳도록 빈, 고래는커녕 고등어밖에 되지 못했다.

어미를 탓하고 부끄러워하는 새끼는 있으나

고래가 아닌 고등어 되었다고 미워하는 어미는 없다.

 

이제야 안다.

엄마는 홍게처럼 한결같이 붉었다는 걸

 

 

 

 

꽃살의 숨결

  - 내소사 꽃살 무늬

 

 

손가락 다 벌려 보아도

어깨 짓누르는 적막의 두께

가늠할 수 없어

눈먼 물고기 되어

꽃살에 맺혔다 떨어지는 이슬과 이슬 사이를 잰다


만개한 여덟 짝 꽃밭

빛 펴 바른 민얼굴 만져 보니

사위지 않은,

뽀얗게 젖살 오른 갓난아이 살갗 같아라


늙은 소목장의 믿음인 양

문살에 매달려 핀 연꽃과 국화

빛바랜 꽃송이, 우러나는 천여 년의 향이 다정多情이라

꽃살에 노닐던 햇살

열린 문틈 사이 들여다보더니 눈 휘둥그레져 비켜선다


피안에 들어서도

오직 한 곳만 바라본 해바라기

구름 낀 날이 많았음인지

잎 떨어지고 꽃잎 또한 시들한 게

가을바람에 섶이 졸아든 나 같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극락도 속세처럼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음인가?


애잔한 연이 한쪽 끝을 잡고

갈 길 바쁜 마음을 헤집는다

 

눈은 멀어져도 마음은 거기에 머물러

천여 년 꽃으로 피길

 

  

 

 

아무튼 환월(幻月)

  

 

  쥐죽은 듯 꼼짝 않던 달이 모처럼 얼굴을 드러냈다

  하나인 듯 여럿인

  언뜻언뜻 완연해졌다 다시 희미해지며

  한 편씩 던져 놓는

  서사 몇몇, 심중에 묻혀 눈물로 읽히거나 헛기침이 되기도 하는

 

  그날,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핏빛 낭자한, 살아도 산 게 아닌 목숨 붙잡으려 눈에 핏발 선 나날이든가

  봄날, 꽃 좋다 건넨 인사가 칼이 되어 돌아와 새끼 가슴에 묻은, 문지르면 타다 남은 한이 새카맣게 묻어날 어미의 한숨이든가

  어쭙잖은 권력 손에 쥐고 세상을 쥐락펴락 핏빛 유희를 즐긴 늑대의 번득이는 눈빛이든가


  곧 사라질 달빛이 아쉬워 밤의 꽁무니를 잡고 보이는 대로 하나씩 지워나가다 마저 지우지 못하고 눈시울 붉히는,


  끝내 자아올리고 마는

  어머니의 한 섞인 눈물 더는 볼 수 없어

  열아홉, 곱디고운 날개를 접은

 

  각시멧노랑나비, 다 잊고 살란 듯이 하나가 여럿 되었다 다시 하나 되는

 


  

 

누워있는 나부(裸婦)*

 

  눈을 감았다. 발가벗었다. 희멀건, 치명적으로 다가오는


  활활 타는 불이다. 붉은 젖꼭지 젖무덤 휘감아 내린 계곡과 능선, 염소를 태우고. 눈썹을 태우고, 손톱과 발톱을 태우고, 치우쳐버린 편견을 태우고, 바람은 동쪽으로 분다. 아득한

 

  불이 흐른다. 붉은 어쿠스틱기타, 줄을 뜯는다. 첫 음, 알싸한 불꽃이 인다. 발가락부터 핥고 오르는, 입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불의 혀, 변주에 들어가자 숲의 소리, 아득하다. 활활! 치닫는 오르가슴, 동굴은 넘치고, 숲은 하얗게 화르륵

 

  불티로 날린다.

  불티 속

 

  염소가 웃는다. 푸르른 몽파르나스. 늘 함께했던 황소,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염소는 칼을 잡는다. 그리고 그려 넣는다. 목이 긴

 

  여인의 푸른 눈에 갈색 연민을,

  동그랗게.

  불티 속

 

  염소가 웃는다. 푸르른 몽파르나스. 늘 함께했던 황소, 노래하고, 술을 마시고, 염소는 칼을 잡는다. 그리고 그려 넣는다. 목이 긴

 

  여인의 푸른 눈에 갈색 연민을,

  동그랗게.

 

 

*모딜리아니(1884~1920) 캔버스 유채 599x920

 

  

 

 

골목 2

 

 

  골목을 간다 골목을 걷어찬다 차인 골목이 굴러가다 골목이 되어 돌아온다 어제도 골목이고 오늘도 골목인 골목이 내일도 그 자리에 서 있을지 모를 전봇대 중간에 매달려 골목인 체하는

 

  골목의 처음과 끝은 끝말잇기처럼 어디서 시작해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는 시작이 끝이요 끝이 시작인 그 의문은 발아래서 자박거리지만 나는 한 번도 뜸을 들이거나 씹어 본 적 없다 지금도 골목의 이름을 몇 번 불러보았지만, 메아리조차 없어도 그 이름에 대해 의심해본 적 없다 뻐꾸기 우는데 아카시아는 피지 않아 계절을 잃은

 

  골목을 간다 재재거리며 가고 사진을 찍으며 가고 테이크아웃된 커피를 빨며 가는 사람들, 구석 자리 하나 차지하지 못하고 대문간 옆에 쪼그리고 나앉은 화분의 낯빛과 돌담 틈새에 자리 잡고 핀 노란 앉은뱅이 꽃 빛을 우리는 골목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늘을 향해 한 면이 트인 것은 목까지 찬 관음증을 뱉어내기 위함이라 짧은 한숨에도

 

  추녀 끝에 올라앉았던 하늘이 골목으로 내려온다 입술이 말라갈 즈음 아침나절 떠났던 안녕이 깨끗이 씻긴 민낯으로 돌아와 손을 내민다 골목과 골목 사이를 핏물처럼 흘러 다니는 사람들이 한곳에 모인다 경화된 골목이 부풀어 터진다 골든타임을 놓친 골목은 한쪽 다리를 절고 다른 한쪽은 다른 한쪽을 흉내 내는

 

  어제도 골목이었고 오늘도 골목인 골목은 내일을 알 수 없기에 내일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골목 10

 

 

  달포 전 골목 어귀마다 나붙은 현수막이 아직도 뜨겁다 여러 종의 늑대가 출몰하는 골목, 어스름이 저녁상을 물릴라치면 누이는 빨랫줄에 널린 냄새를 거두어들이지

  손톱에 기웃거리던 달이 숙성되면 늑대는 직립 보행을 시작하지 날카로운 이빨 대신 비문을 새겨 넣은 고전적 도구의 휴머니즘을 실험하지 


  도구의 신성함을 체득한 늑대는 제 꼬리를 자르고 수수께끼를 내지 풀지 못하면 해마저 으깨 버리겠다는 으름장에 얼어붙은 아침이 안녕! 하는 것은 누군가가 수수께끼를 풀었기 때문이지 다행스럽게도

  늑대가 지나간 골목에는 핏자국이 뿌려지고 소리가 되지 못한 비명이 고이지 골목을 다 기억할 수 없어 핏자국을 따라가며 구석에 웅크린 비명을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었지 주머니 속에서 지독한 편견을 체득한 비명이 밖으로 삐져나올까 봐 지퍼를 채우지 지퍼 저쪽 끝에 재잘거리는 걸음이 있고 이쪽 끝에는 흐느적거리는 걸음이 있지 재잘거림이 침묵하는 순간, 달을 삼킨 그림자가 그림자를 지워 호루라기를 불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숨은 되새김이 되지 않아

 

  부정맥으로 할딱거리는 나는 어쩜 한 편의 서사가 될지 모를 아침을 기다리지 아침이 피 흘리는 해를 끌고 와 골목 끝에다 매달면

 

  그때야 호루라기를 불어대지 뻔뻔스레, 뻔뻔스레 부는 듯 마는 듯 내 귀에만 들리는, 골목은 짐짓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매듭

  

 

  네가 묶으면 내가 풀고

  내가 묶으면 네가 풀고

 

  심중에 맺힌 매듭은 어찌할까도려내지도 그냥 두지도 못할

 

  매듭은 풀어야 할 오해이며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야 묶는 방법은 수십수백이지만 결국은 풀리지 오해도 마찬가지마음을 다하면 꽃으로 피고 나비처럼 날아오르지 때론 올가미도 되지만 그건 몇몇 사악한 것들의 심성일 뿐 매듭의 마음은 아니야

 

  매듭을 짓는 실 올올이 물들이고 여럿을 꼬아 한 인연 안에 든색색인 저 고운 천연의 빛깔 거기엔 우주가 녹아 있지 매듭이 되어본 꽃과 나비는 알아 이슬 머금은 바람과 햇살에 꽃이 피고 눈물과 땀이 밴 달빛에 죽은 나비가 춤춘다는 것을

 

  조급해하지 마신탁은 없어 애써도 풀리지 않는 오해가 있다면 그건 너무 단단히 묶은꼬인 다른 한쪽의 감정 때문이야 미쁜 눈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마리가 보일 거야 빛이 들어오는 작은 틈거기를 살살 간질여 봐 하늘이 보이지 본래 오해는 일란성이야 얽히고설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 고약한 습성을 이용하면 어떤 매듭도 쉽게 풀 수 있어 오해의 끝을 잡은 두 줄은 늘 자기만 보려 해 스스로 빗장을 거는 거지

 

  옛이야기처럼 칼을 쓰면 안 돼 부드러운 바람이 외투를 벗기듯 짓고 푸는 전제(前提)는 사랑이야 그냥 사랑해푸는 것은 더 아픈 삶의 몫이니까

 

  풀려 하지 않는 것은 외로워서 그래외로워서 더 옭아매는 거야 그러니 하소연 아니 말하면 그냥 귀 기울여 줘 그거면 돼


  우리는 너무 바빠

  맺히기 전에 곁으로 가야 하는데 풀고 갈 매듭은 너무 많고

  해가 너무 짧아

  나비가 되고 꽃이 되기에는

 

 

 

 

머니의 강

 

 

다 왔나!

물소리 잦아들고 갯내가 물씬 한 걸 보니

참 길고 오랜 여정이었다 근 백 년이라

이젠 멈출 때도 되었지

또렷하던 굽이 굽이가 희미해지네

어찌 곱게 흐르기만 했겠는가!

하늘이 쥐락펴락하는 날씨도 어디 한결같든가?

비 오는 날 있으면 볕 좋은 날도 있듯이

내 강도 그러하였지

졸졸거리다 폭포처럼 아우성치던,

()에 모여 수다 떨며 깔깔거리던,

그 웃음가슴 밭에 심었지

때 되니 싹트고 꽃 피더만저승꽃그거 그리 슬픈 게 아니여

나름 행복이기도 했지

가슴 치던 날그 화가슴 곳간에 쟁여뒀지

몇 날 안 본 새주름살 하나둘 그렇게 느는

물살이 여려지고 물결이 되물린다

다 온 건지,

쉬었다 가라는 건지,

하긴 그리 서두를 일도 아니지

몇 며칠왜가리하고 외발 낚시도 하고,

가창오리 군무도 보고,

갈대 시인의 시 낭송도 귀동냥하고,

잉어 앞세워 용궁 구경도 가고 그러다

하구언 수문 열리는 날

가는 거여없는 듯 묻어서 가는 거여

저 너머찰랑거리는 큰물이 되는 거지

거기서 고래랑 놀 거여

이보게가네

어머니가 돌아눕는

 

  

 

플망고 

 

 

  귓전을 어지럽히는 협곡의 울음이 먹먹하다.

 

  탁자 위에 놓인 망고 한 알여백이 끝 간데없이 깊다.

 

  망고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빛은 먹먹하고사내를 바라보는 망고의 눈빛 또한 그러한 건

  서로를 너무 잘 알아 어디로 튀어야 좋을지를 가늠하는 것인가?


  튈 것을 예상한 문제의 답은 어김없이 빗나갔고다시 풀기의 정답 노트에는 오카리나라고 명시되어 육감적인 몸에 입바람 불어넣으면 안데스의 청아한 바람 소리 쏟아져 나올 거 같고만년설이 녹고 꽃이 지천이다콘도르 유려하게 창공을 가를 거 같아 답을 적어넣지 못하고 사내는 눈을 감았다.

 

  어떻게 먹을까라는 현실에 이르러

  누구나 하는 보편적 방법으로 껍질째 잘라 과육에 칼집을 넣어 한 절음씩 음미해야지 싶다가 왜 이래아마추어처럼프로답게 끊어진 숨을 살려내 맛있는데도 맛없는 것 같은 헛웃음은 과육을 삼키는 혀처럼 달콤하고맛없어도 맛있는 것 같은 명랑은 씨방을 빠는 입술처럼 가벼워서

 

  칼이 필요해.


  칼은 없고,

  청아한 울음 문 철새는 산을 넘어 옛집으로 가고,

  아이는 헤헤거리며 웃고,

 

  사내는 흉강을 할퀴고 올라오는 콘도르의 검붉은 울음을 흉내 낸다.

 

  방영 중인 걸어서 세계 속으로는 신발 끈을 당겨 매고.

 

===============

[김진수 시인 약력]

 

강원도 주문진 출생

2016년 계간 시와세계》 등단

시집 설핏』 『꿈 아닌 꿈』 『응축된 슬픔이 달다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

동시집 달을 세 개나 먹었다』 

2014년 시마을 문학상 대상 수상

2023년 백교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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