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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초대시인] 멀어도 걷는 사람,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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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회 작성일 26-05-01 07:55

본문

[이달의 초대시인]

 

멀어도 끝내 걷는 사람, 손현숙의 시

 

  아름다운 초록의 계절, 5월의 아침입니다. 

  푸릇푸릇한  5월을 여는 초대시인은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부터 허공의 밝은 결까지, 몸으로 생의 흔적을 새겨온 손현숙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안온한 위로에 머물지 않습니다. 때로는 정오의 빛처럼 날카롭게 스며들고, 때로는 스스로 속을 비워내며 알 수 없는 길을 만들어냅니다.

 

  손현숙 시인의 언어는 야생다정함사이를 오갑니다. 우리를 벗어난 공작새를 탈출이 아닌 본능으로 읽어내고, 만개한 목련 앞에서 망설임 없이 생의 충동을 끌어올립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언제나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이 놓여 있습니다. 해진 양산을 펼치며 시든 백목련 그늘 같은 엄마의 그늘을 바라보는 순간, 그의 서정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손현숙 시인은 1999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이래, 시집 너를 훔친다, , 일부의 사생활, 멀어도 걷는 사람등을 통해 독창적인 시세계를 구축해 왔습니다. 또한 사진 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바다, 저 건너에서 누가 온다등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천후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연구서 발화의 힘, 마음 치유와 시를 펴냈으며, 고려대, 대전대, 한서대학교 등에서의 강의활동과 함께 남산도서관과 한국장학재단에서 청소년·청년 대상 문학 멘토링을 이어가고 있는 등 후학 양성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구용 시문학상과 평사리문학상 수상은 그가 걸어온 치열한 문학적 행보에 대한 값진 증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로 5년간 활동하며 조병화 시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세미나를 진행해 왔으며, 현재 조병화문학관에서 준)학예사로 있는 등 문학의 대중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오고 있습니다. 강의와 문학 멘토링을 통해 후학을 만나온 시간 또한 그의 시를 지탱하는 또 다른 힘입니다.

 

  이번에 소개되는 대표시들 속에서 우리는 멀어도 걷는 사람의 뒷모습을 봅니다. 이름 모를 식물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을 따라나서는 시인의 발걸음은, 곧 우리 모두가 가야 할 생의 궤적과 닮아 있습니다. 때죽나무 꽃송이가 제 목을 치는 서늘한 낙화의 순간에도, 시인은 그 원경(遠景)을 응시하며 삶의 비의를 기록합니다.

 

  손현숙의 시는 묻습니다. 당신의 그늘은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당신의 야생은 지금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지.

 

  시마을 가족 여러분, 5월의 빛 속에서 손현숙 시인의 시를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펼쳐 보이는 그늘과 빛 사이에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다시 걸어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초대글 / 양현근 시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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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도 걷는 사람 외 10

 

     손현숙

 

 

  당신의 왼손은 나의 오른손이다 우리는 손을 잡고 반대쪽으로 걷는다 가끔은 당신을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들판을 가로지르는 나무들 하얗게 손사래 친다 생각난 듯, 이름을 부르면 모르는 얼굴이 뒤돌아다 본다

 

  당신은 어깨를 찢어서 부글거리는 흰피, 휘파람을 불면 꽃들은 만발한다 가을 개 짖는 소리는 달의 뒷면에서 들려오고 눈을 뜨지 못한 강아지는 꿈 밖으로 나가서야 젖꼭지를 물 수 있다는데

 

  담장밖에 둘러쳐진 오죽의 둘레는 그림자가 없다 대나무 숲으로 돌아가야 이름이 돌아오는데, 당신은 멀어도 걷는 사람 도무지 말을 모르겠는 여기, 눈빛으로 기록된 말들 속에서 없는 당신은 다정하다 

 

 

 

저 목련의 푸른 그늘

 

 

  햇살이 꽃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고 정오를 넘는다 나는 매일 저것들의 생기를 빤다 밤이 오면 입술에 흰 피를 묻힌 채 잠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모르는 척,

 

  나는 아침을 밟으면서 싱싱하다 꽃잎 한 장 넘기는 것은 내가 나를 낳는 일, 깊게 팬 쇄골의 그늘, 목젖까지 부푸는 저 목련의 푸른 그늘,

 

 

 

야생이 돌아왔다


 

유연하고 견고한 저 발바닥의 곡선은 개양귀비의 언덕과 

강기슭을 거닐던 눈부신 저녁의 한 때를 기억한다

 

우리에 갇혀 있었던 조 씨 할아버지의 공작새

모이를 주는 사이 문틈으로 탈출했다는

소문은 아무래도 잘못이다 탈출이 아니라 본능이다

 

처음부터 가팔랐던 제 속의 벼랑,

거스를 수 없는 야생의 방식 앞에 내가 서 있다

중문을 지나 오색의 꼬리를 거느린 채 마당으로 들어오는

조용하고 태연한 저 몸의 권력,

 

나는 혼자 비상을 꿈꾸며 날개 밑에 공기를 품듯

입 안에 가득 공작새, 이름을 지어 불러본다

 

누가 저 유장한 말씀 앞을 가로설 수 있을까

 

난간에 뿌리내린 이름 모르는 식물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람을 따라나선다, 나도

공작새처럼

 

배를 밀 듯 딱 한 발짝씩 앞으로 나가는

목소리도 아니고

기척도 없는 달의 궤도처럼,

 

저 몸짓은 처음부터 나의 것이 아니다

 

 


반음, 이상하고 아름다운

 

 

  능소화 꽃둘레가 하늘 귀를 사르는 동안이었을 거다 아주 먼 데서 우레가 가는 길을 우레가 지나가고 머리 위로 뭉게구름 사소하게 다녀간 후, 푸른 잠에서 푸른 잠으로 날아가는 부전나비 한 쌍을 비스듬히 좇고 있었다 반백 년이 흐르고 나는 가난한 책장 한 장을 넘겼을 뿐인데, 낮별떼가 하늘 사닥다리를 타고 반짝거렸다 어느 틈에 아침이 오후 두 시를 사시斜視처럼 데려왔다 바람은 비에 젖어 능소화 꽃둘레 무지개를 타고 올랐다 물에 불은 꽃잎이 담장을 기어오른다 허공에 한 금 한 금 긋는 고양이 비음 사이로 그림자를 등진 사내가 어깨의 햇빛을 털면서 왔다, 갔다 그의 뒷덜미에서 목소리가 부풀었다 졸음처럼, 남서쪽에서 잠비가 올라오는 중이라 했다 오만 년 전의 이야기다

 

 

 

산사나무에는 붉은 귀신이 있다

 

 

산사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손가락을 치켜올리자 붉은 꽃잎이 떨어졌다 손바닥에 꽃잎을 받아내지 못했으므로 나는 그와 이별 중이다 끝과 끝이 닿아서 무슨 모양을 이룰 것인가, 겨울나무의 직립에 대하여 오래 생각한 적이 있다 이별은 그 어느 부근쯤에서 왔지, 싶다

 

과거로 돌아가는 빨간약을 삼킬까, 고민했던 흔적, 나는 거기서 살기나 살았었는지 별점을 치러 문을 나서다 말고 전생을 지금 또 살고 있다는 생각, 너는 그때도 등을 보였고, 또 서성이면서 산사 꽃그늘 아래로 몸을 들인다 새들이 자꾸 봄을 물고 와서 물방울 같은 무덤을 짓고 간다


 

 

 못 밟겠다


 

때죽나무 가지에 목매달았던 꽃송아리 제 목을 제가 친다 꽃그늘 자욱한 낙화 천지 무서운 무엇을 본 것 같다

 

꽃 이파리 건너건너 까치발 뗀다 백의 그림자처럼 뒷걸음질친다

 

꽃대궐모르는 동네 어귀에서도 안으로는 들지 못하고 밖으로 빙빙 돌았던 기억,

 

백기 투항하듯 저를 부리는저 무지몽매 아름다운 한순간,


한 차례 비 긋고 나면 꽃함부로 사라질까 먼 곳으로 돌아돌아가는 원경이 나는 좋다 

 

 

 

용목이라는 말

 

 

좋은 목재는

비 맞고벌레 먹고벼락 맞고

온몸이 흔들리면서

속부터 무너진 나무래요

벌레들이 제집을 드나들 듯

속을 실컷 파먹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길이 생기면

문득하늘 문이 열리고

목수는 다만 그 길을 따라

칼집을 내면서 살을 벌리면서

나무의 결을 가만히 떠내는 거래요

태초의 생명을 손수 받듯

공간 속에 촘촘하게 박인

하늘 무늬를 받들어서 지문이 닳도록

깎고 문지르면서 달래는 거래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나무에

숨을 풀어 생기를 불어넣어,

용의 미늘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목수는 맨발의 신을 공손히 받든대요

받들어서 가만히 벼리는 거래요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아름다운 무늬용목

 

 

 

홍화산사

 

 

  홍화산사에 꽃물 들더니 근심이 생겼습니다 찢어진 가지에서 애순이 돋을 적부터 도진 지병입니다 잊어야하는 무엇들이 되돌아오는 것 같아꽃그늘에서 저만치 걸음을 걷는 무렵입니다


  홍홧가루 자욱하게 터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골목 너머 아이들이 비눗방울처럼 부풀었다 꺼지는 그 순간에도 보리수나무 흰꽃 속에는 붉음을 채우고 있었던 걸까요 마당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나는 왜 검은 상복 같은 옷만 입는 걸까이미 옷은 노랗게 물이 든 다음입니다


  고양이 울음은 영문을 모르겠고 저녁으로 기울어지는 하늘은 낮아서 이별입니다 고개를 꺾어 바라보는 그곳에도 바람은 곱게 불어줄까요 아직은 보리수열매가 익지 않아서 맨발로 땅을 밟아보는 지금 누가 생일 축하해잊었던 내가 문득 돌아옵니다 홍화산사울음 같은 붉음이 와글거립니다

 

 

 

 

그런 날

 

 

  찬비 들숨으로 발목을 감는다 가을빛이 조금씩 짙어지더니 서리국화 멀미 속에 발자국은 흐리고 바람도 붉어져서 눈썹 그늘이 깊다

 

  북사면 양지쪽에선 키 작은 가을꽃 무더기가 바람 부는 쪽으로 무너진다 누구도 상처받지 말기를, 11월의 그림자는 그림자로 지운다 투명한 것들은 너무 투명해서 뒷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는 북극성 옆에 달이 떴다 먼먼 눈빛으로나 스미면서달무리 너울로 한 반나절나는 11월의 달을 보며 도무지 모르겠던 당신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누더기 그늘

 

 

엄마가 쓰던 양산 내가 쓴다

하세월 펴고 접어서 솔기가 다 터진 채

살대는 휘고 빠졌다

공단을 박음질한깜냥에 고급 양산 축에 들었다

이제는 좀까지 슬어

숭숭한 구멍에 하늘이 비친다

그렇다고 함부로 내놓을 수도 없는 일

비 오는 날은 아예 펼칠 꿈도 못 꾼다

그러나 엄마 잔소리 몸에 배었듯이 가방 한 구석에

어엿하고 진지하게 도사리고

숨어있는 그것은

눈감고 더듬어도 손에 착 감겨온다

올여름은 유난히도 더워서

나는 아무 데나 주저앉아 숨 헐떡이며

온 삭신 다 헤진 엄마를 펼치듯

그걸 펼쳐 해 가리개로 쓴다

누더기 그늘 속에서 한숨 돌린다

자동은커녕 찍찍이까지 젖가슴 닳아빠지듯 닳아빠져도

차마 어쩌지 못하는 애물단지

시든 백목련 그늘 같은 엄마의 그늘 속에서

시든 백목련처럼 지는 그걸

어쩌지 못하고 그냥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피었는데 죄나 지을까

 


하필이면 당신 방 창문 앞에

, 폭탄처럼 귀신처럼

허공을 말아 쥐는 나의 몰입

그것은 유혹이 아니라 발정이다

얌전하게 입술 다물어 발음하는

봄 따위, 난간 위를 걷는 고양이 걸음으로

한바탕 미치면 미치는 거다,

오늘이 세상의 끝나는 날이다 몸을 열어

한순간에 숨통 끊어져라 하얗게 할퀴는

, 곱게 미쳐서 맨발로 뛰어내리는데

모가지 허공중에 줄을 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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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현숙 약력 

 

손현숙은 서울에서 태어나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시집 너를 훔친다일부의 사생활멀어도 걷는 사람과 사진 산문집 시인박물관나는 사랑입니다댕댕아꽃길만 걷자바다저 건너에서 누가 온다』 등을 출간했으며연구서 발화의 힘마음 치유와 시를 펴냈다14회 김구용시문학상1회 토지문학제 평사리문학상을 수상했다고려대학교와 대전대학교에 출강했고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로 5년간 활동하며 조병화 시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세미나를 진행했다현재 한서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서 강의하며남산도서관과 한국장학재단에서 청소년·청년 대상 문학 멘토링을 이어가고 있다조병화문학관에서 준)학예사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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