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박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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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박영근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
-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에서, 2002 -
* 이 시에 대해 말을 많이 덧붙이는 건 실례다.
다만 마지막 연에서 모든 건 요약된다.
이만한 감동을 주는 마지막 연을 읽은 적이 없다.
2002년 당시 신문을 통해 읽고는
감동으로 지새던 밤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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