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잎 하나/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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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너스 잎 하나
김기택
급히 팔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어
돌아보니
막 떨어지고 있는
커다란 손 같은 낙엽이었다
팔 없는 손은 내 팔을 더 붙잡지 못하고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마침 뒤에서 오고 있던 발 하나가
무심히 밟자
바스락!
발밑에서 무수한 틈이 갈라지는
쇳소리가 터져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발이 멀리 가버린 뒤에도
소리들은 틈사이에 남아
오랫동안 저희들끼리 바스락거렸다
가을 햇빛이 주름살을 쓰다듬듯
깨어진 마른 핏줄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넓은 잎은 크고 앙상한 손바닥을 오므리며
바스러진 틈으로 빠져나오는 허공을
오래오래 쥐고 있었다
- 시집 <사무원>에서, 1999 -
* 이 시집이 나온 게 벌써 20년이 지났다니, 새삼 세월이 빠름을 느낀다.
시인의 이 무한한 상상력은 가히 놀라웠다.
그런데 그의 상상력의 시작은 대부분 생활의 작은 순간, 혹은 실상이었다.
시가 상상력의 산물이라지만 시인은 생활인, 직장인으로서의 실존을 놓지 않았다.
생활에서 상상으로 다시 생활로 순회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많은 걸 배웠다.
시는 상상과 생활 둘 다 잡아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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