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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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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99회 작성일 20-12-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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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 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시집 <사랑의 변주곡>에서, 1990 -






*  시가 실제 씌어진 연도는 1957년이다.

   모든 문제는 '서둘러 혁혁한 업적을 쌓으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정치도 사회생활도 가정에서도 이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시도 마찬가지다.

   뭔가 대단한 걸 쓰려 하면 번번이 무참히 실패한다.

   답은 나의 아둔함과 가난함을 인정하고 절제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 오는 것이 나의 귀여운 아들 같은 영감이다.

   영감이 온 다음엔 달의 행로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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