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씌어진 시(詩)/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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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씌어진 시(詩)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握手).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에서, 1948 -
* 이 시는 1942년 도쿄의 아주 작은 하숙방에서 씌어졌다.
시인의 시가 모든 세대를 걸쳐 읽히는 것은
내밀한 감정을 잡아당기는 공감이 있기 때문이리라.
한 시간이 넘는 학교에서 집까지의 거리를 걸어가며 시인의 시들을
외우던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이만한 시인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는지.
그의 시는 기교나 유려함 따위의 형식으로 평할 수 없다.
다만 마음을 감화시키는 진정성이 그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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