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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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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서글픈/최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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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00회 작성일 21-01-16 20:14

본문

존재의 서글픈* 

     최승자를 위하여







최정례






이걸 뭐라고 번역해야 좋을까

You are living for nothing


당신은 뭔가를 위해 사는 게 아니네

당신은 헛것을 위해 사네

의미없이 하루하루를 지내는 당신,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사네


어쨌든

당신은 사막 깊은 곳에 작은 집을 짓는다고 들었네

제인은 당신의 머리칼 한줌을 가지고 돌아왔네

모든 것을 정리하기로 한 그날밤에

당신이 주었다고 하더군**


정말 모든 게 정리될 수 있는 것인지?

존재의 서글픔은 어느 틈으로든 새어나오네

밤새도록

수도꼭지에서 물방울 떨어져 내리듯이


가지 말라고 조심하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네 말릴 수가 없었네


사막의 집, 무덤 속 같은 그곳

촛불을 켜둔다 해도 몇시간 못 버티겠지

작고 깊고 어둡겠지


이곳은 비가 내리고 노래가 슬프고

아무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네

대낮에 적막이 오한처럼 파고들고

느닷없이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온다네


아이를 납치했다

오천만원을 당장 입금하지 않으면

장기를 적출해서 팔아버리겠다!

그러면

누가 감히 버틸 수가 있겠는가


제발 내 아이를 살려주세요

마이너스 통장을 쓰고 있지만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이렇게 낚이게 되는 거지

안개처럼 우울이 기어들고

제인이 가져온 한줌 머리카락처럼

그 노래 [Famous Blue Raincoat]처럼


우리는 어리석고, 결국은 낚이게 되어 있지

가버린 자의 머리카락 한줌

사막의 모래 한삽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상투적인, 허무한 갈고리에

걸려들고 말지


사막 저편에 납치된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지

정거장에 서서 모든 기차를 기다렸다던 당신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 사실은,

사실은 모르고 있는 우리 모두겠지




최승자 [most famous blue raincoat]에서.

** Leonard Cohen의 노래 [Famous Blue Raincoat]에서.




-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서, 2015 -






* 오늘 시인이 암투병 끝에 6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신문 기사들은 전하고 있다.

  나는 시인을 잘 모른다.

  단지 몇 편의 시만을 읽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생활이며, 민낯처럼 까놓고 다가온다.

  허투루 쓰는 단어가 없다.

  그러면서 가슴을 파고든다.

  기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는 시인의 말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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