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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는 숲/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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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51회 작성일 21-01-17 19:44

본문

너를 보내는 숲 




안희연





빈방을 치우는 일부터 시작했다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돌처럼 얹고서

베개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내고

흩어진 옷가지들을 개키며


몇줄의 문장 속에 너를 구겨 담으려 했던 나를 꾸짖는다

실컷 울고 난 뒤에도

또렷한 것은 또렷한 것

이제 나는 시간을 거슬러

한 사람이 강이 되는 것을 지켜보려 한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그들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흙을 퍼 나르는

분주한 발소리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분명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사방에서 장정들이 몰려와

나를 묶고 안대를 씌운다

파고 파고 파고

심지가 타들어가듯

나는 싱싱한 흙냄새에 휘감겨 깜빡 잠이 든다


저기 삽을 든 장정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가만 보니 네 침대가 사라졌다

깜빡 잠이 든 사이

베개가 액자가 사라졌다

파고 파고 파고

누가 누구의 손을 끌고 가는지

잠 속에서 싱싱한 잠 속에서

나는 자꾸만 새하얘지고


창밖으로 

너는 강이 되어 흘러간다


무릎을 끌어안고

천천히 어두워지는 자세가 씨앗이라면


마르지 않는 것은 아직

열려 있는 것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리고

눈이 내린다


세상 모든 창문을 

의미없이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에서, 2015 -





* 우리는 누군가를 보낸 후에야 후회를 한다.

  단 몇 줄의 말들과 문장 속에 그를 휴지처럼 구겨 넣었던 날들을.

  강으로 흐르고서야 우리는 아무 얽매인 것 없이

  창문을 통해 그를 바라본다.

  그렇게 우리는 너를 보내는 숲에서 너를 보내고 있다.

  언젠가 나도 보냄을 받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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