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 김경주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외계 / 김경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1활연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6회 작성일 21-02-09 11:03

본문

언어는 사기다
─ 김경주, 외계(外界)를 중심으로

/ 활연



1. 외계(外界) 전문


외계(外界)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2. 사기

사기는 여러 뜻이 있다.
①[詐欺]: 못된 꾀로 남을 속임.
②[沙器/砂器]: 점토, 장석, 규석, 도석 등의 무기 물질을 원료로 하여 성형한 다음 열을 가하여 경화(硬化)시킨 그릇 따위의 물건.
③[辭氣]: 말과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 말하는 태도나 상태.
④[射技]: 활 쏘는 재주.
⑤[斜攲]: 산이나 언덕이 가파르게 기울어진 정도.
⑥[些技]: 변변치 못한 기예(技藝), 또는 사소한 기능.
⑦[肆氣]: 자기의 기분대로 성미를 부리고 함부로 행동함.
등등 많다.


3. 시인은 어떻게 사기 치는가?

우선 한 문장을 보자,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양팔이 없다', '바람만을 그린다'는 사기(⑦肆氣)다. 시인의 성미가 함부로 작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화가는 지상에는 없고, 외계에나 있을 법하니까. 그런데 이 사기는 독자를 유인하는데, 독자를 감아쥐는데 그 악력이 압도적이다. 궁금증 대폭발이다. 이 사기(③[辭氣])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성공한 사례이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이 문장은 사기(④[射技]) 충만한 사기다. 화가도 그렇거니와 화자도 불가능한 상황을 가역성으로 끌어들인다.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행성에서나 부는 바람일 테고, 그것을 '종이에 그려 넣었다'면 사기(⑥[些技])가 아니라 탁월이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이 문장은 사기(⑤[斜攲]) 가파른 언덕에서 쏟아부으면 하얗게 흩어질 듯도 싶다. 붓이 부드러운 숨소리를 낸다면, 그 붓은 태초와 맞닿아 있다. 아이라야 시원(始原)에서 방출된 지 가장 이른 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초의 호흡과 같다는 뜻일 것이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이 문장은 바람을 경화(硬化)시킨 사기(②[沙器/砂器])다. 온몸을 벌리고 그것도 절벽 끝에 서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하는 것, 그것은 세상에 없는 그릇에 세상에 없는 색(色)을 담는 일이겠는데, 바람으로 그린 색(色)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 불어와야 가능하겠다. 귀하게 이걸 시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은 그야말로 사기(①[詐欺])다. 우리가 경악해 마지 않는 바로 그 사악한 속임수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장에서 왜 전율을 느끼나, 왜 거대한 아우라와 자장에 휘감기나, 외계가 책상에 엎질러져 모든 필기구가 자지러지나. 그렇다면, 시인의 사기는 전략적인 사기였고 우리 선조들이 가마에 굽던 사기와 닮았다.

이런 지점에서 경이로운 개벽과 창조를 느낀다. 외계를 데려온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화자의 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도되고 전복되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오래, 자전시키고 싶다. 이것이, 시라는 사기의 전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에 등장하는 화가(畵家)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가. 대한민국 일산에 사는 김경주다. 그와 당대를 사는 희열이 느껴진다. 선조도 아니고 후대도 아니고 우리의 곁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5,011건 1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912 07-07
5010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3 04-26
500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 04-26
500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 04-26
5007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9 04-23
5006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3 04-23
500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 04-22
500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 04-21
500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 04-21
5002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 04-18
500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 04-17
5000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 04-16
499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 04-16
499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 04-15
4997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 04-11
499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 04-11
4995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 04-10
4994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3 04-10
499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 04-10
4992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2 04-10
4991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 04-09
499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 04-09
4989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 04-08
4988 솔바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 04-07
4987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 03-27
4986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1 03-21
4985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1 03-15
4984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 03-08
4983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5 03-02
4982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27 02-20
4981
담배/장승규 댓글+ 2
조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7 02-18
4980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6 02-06
4979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9 01-30
4978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55 01-23
4977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3 01-16
4976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3 01-09
4975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8 01-02
497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2 01-02
4973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85 12-31
4972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6 12-26
4971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5 12-25
4970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9 12-21
4969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5 12-20
4968 조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5 12-19
4967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33 12-16
4966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60 12-13
4965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4 12-12
4964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8 12-12
4963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 12-05
4962 강경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 12-02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