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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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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데이즈 / 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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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1활연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80회 작성일 21-02-11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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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데이즈

기혁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제법 큰 떨림이 온다

깊은 밤 틀어놓은 전인권의 라이브처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긴 협주곡처럼

나의 연인은 김광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서로 등을 맞대고 벽 너머 얼굴을 떠올려보는 이 한참,
우리에게 불면을 덮어주던 떨림을
운명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몇 통씩 항의 전화를 받는 날이면, 근황보다 먼 곳을 물었다
무심코 긁적인 자리마다 진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하드보일드한 나의 심장도
두터운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무단 송출 채널

천장에서 어둠을 갉아대는 소리
한낮의 적의敵意가 뭉쳐지는 소리가 들릴 때
박히지 않는 못의 대가리를 후려치다 끝끝내
제 속을 짓이기고 마는 운명

피 묻은 안테나를 세우면 온몸으로 날리던 엄살이 지글거린다

에덴의 시험 방송 어디쯤
귀신을 닮은 손금에도 스테레오가 잡힌다




기혁 시집, 『소피아 로렌의 시간』(문학과지성사, 2018)에서.

【감상】

   침묵을 전송하는 방송국이 있다. 그곳은 벽과 불면과 근황과 진물과 콘크리트, 그리고 피 묻은 안테나가 질료이고 그것이 소리국의 주파수이다. 음악은 영혼이라는 뇌하수체가 떨림을 가진 것이지만 그것은 벽 너머 등을 맞대고 듣는 침묵이다. 근황의 아토피는 온몸을 긁어대지만 그 가려움의 무단 송출 채널은 알 수 없다. 천장과 천정에는 층간소음이 있고 서로의 소음을 견딜 수 없는 못대가리들이 차라리 제 정수리를 후려치는 것이 운명이라면, 지상의 항의 전화를 받는 에덴의 기지국은 밤낮의 암전만 반복하는 긴 협주곡일 뿐이다.


  신의 벽과 인간의 벽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곳에서는 어떤 소리든 떨림으로 온다. 누군가의 사랑이 벽 너머에서는 공포 기지국의 오컬트이듯이 운명이 피를 흘린다면 그것은 살갗에 날카롭게 돋은 엄살이다. 그것은 천장(천정)에서 어둠을 갉아대는 소리, 그 한낮의 적의(敵意)를 모르기 때문이다. 운명은 무단 송출 채널이고 우리는 못대가리처럼 후려쳐 맞으면서 운명의 벽 너머를 엿듣고 있다. 신은 침묵으로 말하되 결코 불면의 눈꺼풀을 내리지는 않는다.


  기혁은 1초마다 사라지는 70여 개의 죽은 별들이 아니라 아마도 초신성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전통과 시의 옹(ㅈ)심 든든하다는 문지인지 문지방인지에서 낸 시집을 찬찬히 읽으며, 이 문청은 문청이 아니라 노련한 침묵 설계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의 누옥은 여러 식솔을 데리고 있지만, 저마다 성격이 다르다. 그런데도 목청이나 그림자의 길이나 뒤꿈치 냄새 등등은 유전자라는 원형에 못대가리를 박고 있다.


  한 생체의 언어적 환경이나 공간, 그 속에 슬어놓은 쥐똥 같은 시들은, 말피기소체에서 짜낸 오줌같이 몸을 돌다가 몸속의 물소들의 데리고 마침내 누렇게 (오래 참은 요의처럼) 대롱 하나를 엄지 검지로 쥐고 맨땅에 그려놓은 지도일 것이다. 그 지도는 보물섬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별 뒤꿈치에 쌓인 각질의 간지러움 찾아가는 것이다.


  피는 볏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지만 밥알의 콧잔등에 찍힌 화점일 뿐이다. '귀신을 닮은 손금'을 오래 흘러가 보면 유년의 깜깜한 하늘에서 물고기나 전갈이나 사자나 박제된 짐승들이 내지르는 반짝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홀로이거나 가난한 연인이거나 PG 등급의 에로물은 고추와 숯을 매달아 금줄을 놓는다. 운명이라는 거대 담론이 벽 하나를 두고 소곤거릴 때 그것을 듣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다. 

          / 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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