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가 없다/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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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가 없다
천양희
늙음도 하나의 가치라고
실패도 하나의 성과라고
어느 시인은
기막힌 말을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어느 선배는
의젓하게 말하지만
마음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것
마음은 잡아도 잡아도 놓치고 마는 것
너무 고파서 너무 놓쳐서
사랑해를 사냥해로 잘못 읽은 사람도 있다고
나는 말하지만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위대한 것이라고
슬픔에게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고
다시 어느 시인은
피 같은 말을 하지만
모르는 소리 마라
몸 있을 때까지만 세상이므로*
삶에는 대체로 순서가 없다
* 황지우의 시 [피크닉]에서.
-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에서, 2011 -
* 살면서 모르는 소리 많이 한다, 우리는.
어쩌면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처럼,
순서 없이 시간의 기억처럼 가버리는 게 삶일지도.
기막힌 말과 의젓한 말을 하지만 실상 시인도
순서 없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어느 누군가의 기억 부스러기 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겸손할 것. 순서란 애초부터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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