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소가 있는 골목/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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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소가 있는 골목
길상호
널빤지로 덧대 놓은 문짝은
오래 물기가 빠져나가 뒤틀리고
휘어 틈새를 벌린 사연들을
지금은 햇살만 기웃거린다
사무실 노인은 그런 것도 모르고
굽은 허리 의자에 맞추고 앉아
어떤 삶의 내력을 서술 중일까
노인의 몸을 빠져나온 물결도
얼굴이며 손등이며 무늬를 남겼다
그 골 깊은 그림자를 가져다
한 자 한 자 글씨를 써 나가는 그에게
대필은 마음의 그늘을 대신 읽는 일,
먼지 낀 유리창 너머 하늘은
그의 눈처럼 침침해지고
마지막 서명도장을 찍는 노을처럼
읍사무소 뒤편 대서소는 저문다
-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에서, 2018 -
* 참 고요한 시다.
단정하고 정갈한 생각이 시의 넓은 잎사귀에 맺혀 있다.
이윽고 마지막 서명도장을 찍는 노을에 이르러선 가슴이 살짝 움찔한다.
시인이 한 자 한 자 마음에 새긴 시를 보내고 있다,
허리 굽은 노인에게, 또 허리가 굽어갈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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