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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장 /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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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6회 작성일 21-03-23 16:32

본문

마지막 문장

 

김은지

 

 

엄마가 당신이 쓴 시를 읽어 보라고 줬다

나는 다 좋은데 마지막 문장이 좀 뜬금없다고 했다

엄마는 니가 뭘 아냐며,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문에서 읽어 온 시가 얼마며,

두보도 서정주도 다 읽은 사람이고

문창과에 다닌다는 애가 이제 보니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 라며

엉크렇게 화를 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일이삼사 연이 다 좋다, 다 좋은데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고

마치 내가 금강산을 다녀온 느낌까지 들었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떠오른거냐, 찬찬히 내 감상을 전한 뒤

그런데 마지막에 이런 마무리는 일기 같다랄까 아쉽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니까 니가 시를 뭘 아냐며, 내가 지금까지 신문에서 읽어 온 시가 얼마며

두보도 서정주도 다 읽은 사람이고

봄가을이면 백일장에서 매번 상금도 타 오고

누구 엄마도 읽어 보더니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 쓰냐며 그랬는데 넌 뭐냐, 라며 화를 냈다

 

엄마가 이렇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니

내가 뭐 시를 못 썼다고 한 것도 아니고

한 문장 정도 이견을 가질 수 있는 것 아니냐

문장을 지적하는 게 이렇게 기분 나쁜 거였나 문창과 친구들은 정말 강철 심장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을 차릴 때엔 한발 물러나

엄마, 아마 내가 시를 많이 못읽어 봐서 이런 표현 방식에 익숙하지 못한가 봐요,

어렵게 말을 건네 봤다

그러자 그건 정말이지 니가 몰라서 이해를 못하는 거다, 라며

그 마지막 문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엄마가 이렇게 오래 화를 안푸는 사람이었다니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아니라 허만분 씨를 화나게 만들었다

 

엄마 다시 보니 마지막 문장이 괜찮아요

어제는 미안해요

다음 날 사과까지 했지만

사과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엄마는 계속 시를 쓰고 있다

엄마가 엄마 얘기 글로 쓰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는데

자꾸 엄마 얘기를 쓰게 된다

생각해 보면 엄마의 마지막 문장은 그렇게 일기 같지도 않았다


------------------------

김은지 : 문경 출생. 2016실천문학등단


 

[감상]

 

시가 지루할 만큼 일상을 닮아 있다. 엄마는 보통 딸에게 져주고 양보하는 사람. 딸의 훈수에 대한 엄마의 고집이 뭔가 그럴듯하고 근사한 이유이면 좋을 텐데, 고리타분한 두보와 서정주만 지루하게 반복한다. 엄마의 삶에 뒤늦게 시가 찾아왔다. 늦은 나이에 백일장에서 받은 상을 아이처럼 자랑하는 엄마는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허만분이다.

 

마지막 문장은 그저 평범하고 좋은 엄마로서 살아왔던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문장이다. 마지막 문장은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허만분을 호명해 준 시이며, 시를 쓰는 허만분이다. ‘엄마 다시 생각해보니, 마지막 문장이 괜찮아요

 

이름 없는 엄마로 사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많은 우리들의 허만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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