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위하여/최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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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위하여
최종천
박씨의 검지는 프레스가 베어먹어버린
반토막짜리다 그런데 이게 가끔
환하게 켜질 때가 있다
그가 끼던 목장갑을 끼면
내 손가락에서 그의 검지 반토막이
환하게 켜지는 것이다
박씨는 장갑을 낄 때마다
그 반토막의 검지가 가려워서
목장갑 손가락을 손가락에 맞게 접어넣는다
그 접혀들어간 손가락은 때가 묻지 않는다
환하게 켜지는 검지의 반토막이 보고 싶어
나는 그의 목장갑을 끼곤 하는데
그러면 전신에 전류가 흐르는 것이다
상처가 켜놓은 것이 박씨의 검지뿐이랴
과일은 꽃이라는 상처가 켜놓은 것이다
상처가 없는 사람의 얼굴은 꺼져 있다
상처는 영혼을 켜는 발전소다
- 시집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에서, 2007 -
* 시인은 상처를 애써 긍정의 자리에 세우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는 아프다.
아프지만 그 아픔이 내 얼굴을 켜고, 영혼을 켠다.
이렇게 시를 통해 자위하지만 여전히 상처는 아프다.
견디는 것도 아프다.
아픔은 내성이 생기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든 아픔은 환하게 아프다.
그래서 이 환한 아픔을 대항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환한 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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