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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바구니/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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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39회 작성일 21-03-28 13:03

본문

꽃바구니 





나희덕 






자, 받으세요, 꽃바구니를. 

이월의 프리지아와 삼월의 수선화와 사월의 라일락과

오월의 장미와 유월의 백합과 칠월의 칼라와 팔월의 해바라기가

한 오아시스에 모여 있는 꽃바구니를.

이 꽃들의 화음을.

너무도 작은 오아시스에

너무도 많은 꽃들이 허리를 꽂은

한 바구니의 신음을.

대지를 잃어버린 꽃들은 이제 같은 시간을 살지요.

서로 뿌리가 다른 같은 시간을.

향기롭게, 때로는 악취를 풍기며

바구니에서 떨어져내리는 꽃들이 있네요.

물에 젖은 오아시스를 거절하고

고요히 시들어가는 꽃들,

그들은 망각의 달콤함을 알고 있지요.

하지만 꽃바구니에는 생기로운 꽃들이 더 많아요.

하루가 한 생애인 듯 이 꽃들 속에 숨어

나도 잠시 피어나고 싶군요.

수줍게 꽃잎을 열듯 다시 웃어보고도 싶군요.

자, 받으세요, 꽃바구니를.

이월의 프리지아와 삼월의 수선화와 사월의 라일락과

오월의 장미와 유월의 백합과 칠월의 칼라와 팔월의 해바라기가

한 오아시스에 모여 있는 꽃바구니를.



- 시집 <야생사과>에서, 2009 -









* 자, 받으시라.

  이 계절의 꽃들을.

  하루가 한 생애인 듯 살고 있는 저 꽃바구니 속의 꽃들을.

  그러면 이제 나는 온 생애가 하루인 듯 살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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