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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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박소란
그러니까 나는
다음이라는 말과 연애하였지
다음에,라고 당신이 말할 때 바로 그 다음이
나를 먹이고 달랬지 택시를 타고 가다 잠시 만난 세상의 저녁
길가 백반집에선 청국장 끓는 냄새가 감노랗게 번져나와 찬 목구멍을 적시고
다음에는 우리 저 집에 들어 함께 밥을 먹자고
함께 밥을 먹고 엉금엉금 푸성귀 돋아나는 들길을 걸어보자고 다음에는 꼭
당신이 말할 때 갓 지은 밥에 청국장 듬쑥한 한술 무연히 다가와
낮고 낮은 밥상을 차렸지 문 앞에 엉거주춤 선 나를 끌어다 앉혔지
당신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바삐 멀어지는데
나는 그 자리 그대로 앉아 밥을 뜨고 국을 푸느라
길을 헤매곤 하였지 그럴 때마다 늘 다음이 와서
나를 데리고 갔지 당신보다 먼저 다음이
기약을 모르는 우리의 다음이
자꾸만 당신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지
- 시집 <심장에 가까운 말>에서, 2015 -
* 다음에 하자, 다음에 만나자, 다음을 기약하자, 다음에.
다음이라는 말은 일종의 희망이다.
다음이라는 것이 없다면 우린 무엇으로 오늘을 견딜까.
청국장처럼 다음은, 지금이라는 밥상에 우릴 앉아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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